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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2)

박주화 2012. 1. 21. 14:57

(사)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9년 1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12회)

 

설악행각(雪嶽行脚) (12)

노산 이은상

대승폭(大勝瀑)의 기우특관(奇又特觀)

  우(右)로부터 몸을 제대로 틀어올려, 기껏 뾰족해보자 기껏 솟아보자 한 봉(峰)이 가리봉(加里峰)이요, 그 다음으로 끝은 칼날 같은 선(線)으로 삥 돌리고도 안으로 휘우듬이 패어 밥을 푼다면 한번에 십만석(十萬石)은 퍼낼법한 것이 이곳 특유(特有)의 ‘주걱봉’이요, 또 그 다음으로 키도 맞추어 대중소(大中小)인것이 부명(父命)을 받자와 공수(拱手)하고 선듯함은 물을것없이 ‘삼형제봉(三兄弟峯)’입니다.

  이것들이 횡(橫)으로 열립(列立)하여, 남천(南天)의 일면(一面)을 통히 가리고서, 남의 경탄(驚嘆)과 찬미(讚美)를 허락도 없이 뺏어가는 것은 뺏어갈수록 ‘분’하련마는, 뺏어갈수록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 암로(岩路)를 넘어, 다시 숲속을 헤치며 얼마쯤 가노라니, 어디서 문득 백룡(白龍)이 번쩍하고 눈앞을 지나가면서, 쏴하는 이상한 소리가 이막(耳膜)을 깊이 쏩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찰나(刹那)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직감(直感)을 주는 이것이.

  여기가 어디오니까 이 무딘 머리를 번개칼로 때리는 황홀(恍惚)한 여기가.

  어허! 장엄(莊嚴)한자여. 어허! 웅려(雄麗)한자여. 어허! 천장(天匠) 신교(神巧)로라도 애쓸대로 애써 된자여. 어허! 열민(熱悶)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지도론(智度論)의 소위(所謂) ‘냉열청료 무복열뇌(冷熱淸了 無復熱惱)’를 맛보게 하는 자여.

  그래 네가 누구? 네 이름이 무어?

  가로되 ‘설악산(雪嶽山)’

  그리고는 또?

  가로되 ‘대승폭(大勝瀑)’

  과연 만장(萬丈) 대승폭이 천심(千尋)에 허낙(虛落)하는 신비한 대광경(大光景)을 대안(對岸) 암상(岩上)에서 건너다보는 때에 그대로 광희(狂喜)에 몸과 마음을 둘 곳을 모릅니다.

  더구나 이 대승폭의 기우특관(奇又特觀)이라 할것은 지금 저 아침 햇빛에 반사(反射)되어 생긴 무지개입니다. 우리가 이 무지개를 같이 보려고, 일부러 오전(午前)에 이곳을 찾기로 한것이어니와, 위약(違約) 없이 그 무지개가 여기 와 춤을 추어 줍니다.

  지금 저 폭포(瀑布) 긴 줄기의 한 중간(中間)쯤에, 바람에 날리는 수연(水煙)을 따라 상하 좌우로 요동(搖動)하는 채홍(彩虹)의 신비경(神秘景)은 무어라 전할 길이 없습니다.

  물리학(物理學)으로 하여금 세상의 만든 무지개를 다 설명(說明)하게 하라. 그러나 이 대승폭 무지개만은 동물학(動物學)에 맡겨 해설(解說)해보게 하라. 그래도 아마 이 기이(奇異)한 동물(動物)은 동물인 그대로 동물학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창태(蒼苔)가 암상에 자리를 깔았기로, 그대로 예비(豫備)한 내 좌석(座席)인양 주저(躊躇)없이 편히 앉아, 절벽(絶壁)에 수(繡)를 놓은 홍수(紅樹) 사이로 기이한 동물 움직이는 무지개의 신괴(神怪)한 춤과 함께 그속으로 떨어지는 장폭(長瀑)은 비경(秘景)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는 사람의 욕심이 여기에서도 또 원함이 있다하면 ‘저 폭포 거슬러 한번 올라가 주었으면’ 하는 것 밖에 더 원할 것이 없겠습니다.

  삼연집(三淵集)에 의하면, 이 폭포를 한계폭(寒溪瀑)이라고도 일컫는 모양이어니와, 그는 여하간(如何間)에 삼연의 시(詩) ―

 

  견산필기준(見山必其峻) 견수필기폭(見水必其瀑)

  위재한계폭(危哉寒溪瀑) 기자만장벽(起自萬丈壁)

  벽고불착수(壁高不着水) 창창경일석(蒼蒼竟一石)

  경풍불중류(輕風拂中流) 무산표남북(霧散飃南北)

  여말구배회(餘沫久徘徊) 삽삽취풍백(颯颯吹楓栢)

  삽백결음심(颯栢結陰深) 불가규중곡(不可窺中谷)

  서봉일기은(西峰日旣隱) 동대좌부득(東臺坐不得)

  장이향상원(將以向上源) 야위소제숙(夜爲招提宿)

 

이라 한것을 보면, 석양(夕陽)에 이 폭포를 본 모양이요, 그리하여 옛날 폭포 상원(上源)에 있던 대승폭(大勝瀑)에 가서 잔 모양입니다.

  그러나 소유(少遊) 권상용(勸相容)은, 그 기(記)에

  “철벽직삭(鐵壁直削), 백광관천자폭야(白光貫天者瀑也), 폭지상하(瀑之上下), 약불의석(略不依石), 허낙첨심(虛落千尋), 홍훈조벽(虹暈罩壁), 위힐문사곡(爲纈紋紗穀), 일사지연야(日射之然也)”

라 한것을 보면, 그는 나와 같이 아침에 와서 이 무지개 구경을 한 모양입니다.

  여기를 고문(古文) 이야기를 하고보매, 14세 소녀(少女) 시절에 쓴 금원(錦園) 여사(女士)의 ‘호동낙서기(湖東洛西記)’ 중에 있는

 

  천봉돌울삽천여(千峰突兀揷天餘) 경무초수화불여(輕霧初收畵不如)

  호시설산기절처(好是雪山奇絕處) 대승폭포승광노(大勝瀑布勝匡盧)

 

라는 시입니다.

  고시(古詩)를 읊은 남아에 나도 수장(數章)을 얻어, 이 대승의 경(景)을 그리는체 하였습니다.

 

  만장(萬丈) 저 암벽(岩壁)이 솟아 어디 닿았는고

  떨어져 오는 근원(根源) 우러봐도 모를러니

  천심(千尋)에 운림(雲林)이 어려 밑을 또한 못 불러라

  흰 허리 문득 끊여 연기 되고 구름 되고

  날려서 흩뿌릴제 비 되고 바람 되고

  그 속에 산무지개 들어 춤을 추며 돌더라.

 

대승령(大勝嶺) 넘어 조추(槽湫)까지

  이 대승폭 산무지개의 찬란(燦爛)한 오색무(五色舞)도 햇살이 퍼짐을 따라 점점 살아져버립니다. 그러나 폭포의 장엄한 풍악은 간단없이 계속(繼續)합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폭포 대안(對岸)의 반석 위에는 ‘구천은하(九天銀河)’란 사자(四字)의 각자(刻字)가 있어, 그 용사비등적(龍蛇飛騰的) 웅려(雄麗)한 필세(筆勢)가 거의 사람이 썼다 함은 의심하게 하거니와, 지금 이 풍악 소리에 더구나 글짜마다 꿈틀꿈틀하는 것 같은 것이, 과연 여기와서야 ‘생동(生動)’이란 말을 씀직합니다.

  전(傳)하되, 이 각자(刻字)를 양봉래(楊蓬萊)의 필(筆)이라 하거니와, 금강(金剛) 만폭동(萬瀑洞), 향산(香山), 상원암(上院菴), 등처(等處)의 각자와 그 체(體)를 같이한 점으로 보매, 어두운 내 눈으로도 그 전언(傳言)이 옳은것 같습니다.

여기서 떠나, 동곡(洞谷)의 우로(右路)로 하여 숲속으로, 또는 개울 바닥으로, 다시 숲속으로 지나갑니다.

  신비(神秘)한 적막(寂寞)을 포옹(抱擁)하고 있는 이 총림(叢林) 속이, 어찌 생각하면 고작 무미(無味)하고 고작 단조(單調)하여서, 피로(疲勞) 밖에 주는 무엇이 없다고도 할것입니다.

  그러나 고산(高山)에 이는 금풍(金風)이 잔디를 말리려기 이리 바쁜데, 송백림(松栢林) 연록(軟綠) 심록(深綠)이 그 빛을 겹겹이 싸고 둘러서, 남의 뼈속, 맘속까지도 기어이 기어이 청보석(靑寶石)보다 더 파랗게 물들이려함을 느낄 때에, 청신(淸新)을 따로 어디서 얻을것이 아니라, 정화(淨化)를 달리 누구에게서 구할것이 아니라, 여기 이 송백로(松栢路) 속이 거기인줄을 알겠습니다.

  또한 지금 어느 나무에선지 탁목조(啄木鳥)의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은 이미 임색(林色)에 취(醉)했거니와, 귀는 잠깐 섭섭하더니, 이제 또한 저 탁목조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탁목조의 소리는 구슬픕니다. 아픕니다. 가슴에 못을 박듯 피를 내는 소리입니다.

 

  적막(寂寞)한 깊은 산에 나무 쪼는 탁목조(啄木鳥)여

  행인(行人)의 여읜 가슴 쪼는듯이 아프구나

  네 소리 뭇 새와 달라 남을 이리 상(傷)하나니.

 

(다음호에 계속)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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