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4회

박주화 2012. 1. 21. 14:56

(사)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2009년 4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14회)

설악행각(雪嶽行脚) (14)

노산 이은상

삼연(三淵) 영시(永矢)의 정람(精藍)

 

  상풍(霜風)이 날마다 높아져, 이 산중에 들어온 후로도 전일(前日) 달리 별로 싸늘한 10월 5일,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이 이 백담사(百潭寺)를 떠나, 어제 석양(夕陽)에 내려오든 백담동(百潭洞)을 다시 거슬러 오릅니다.

  어제 우리가 대승령(大勝嶺)에서 내려오다가, 이리로 갈려오던 몫을 지나니, 노방(路傍)에 한 목비(木碑)가 서있어, 좌로(左路)로 가면 ‘늘목고개’를 넘어 외설악(外雪岳)으로 질러빠지는 길이 되고, 우로(右路)로 가면 영시암(永矢菴)이 된다는 주의(注意)가 적혀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영시암행(行)인 우로로 얼마쯤 가노라니, 로우(路右)에 청징(淸澄)한 일(一)담(潭)이 있고, 담하(潭下)에는 백사장(白沙場)이 보기 좋게 놓였는데, 사변(沙邊)에는 청색(靑色) 반석(盤石)이 기괴(奇怪)한채로 수십명은 앉을만합니다.

  담(潭)은 영산담(影山潭) 내산(內山) 제봉(諸峰)의 면용(面容)이 이 담 속에서 투영(投影)하였다는 뜻이라 하거니와, 바위에 올라앉아 물속을 굽어보매, 과연 산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사람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윽고 다시 보매, 산과 하늘은 그대로 보이건만, 구름은 간곳이 없습니다. 아니 보인듯이 스러지는 자(者)가 구름뿐이 아니겠지요.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1)

의 구(句)를 여기 와 다시 한번 읽어보매, 옳은 말인지 긇은 말인지 그는 판단(判斷)하고싶지 않은채로 나도 몰래 내 고개가 무수(無數)히 끄덕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영산담(影山潭) 맑은 물에 저기도 내가 있네

    누가 참이온지 어느것이 그림잔지

    물 속에 지나는 구름 보고, 웃고 돌아서니라.

 

  소허(少許)에 판교(板橋)를 건느게 되는데, 좌로 보이는 동곡(洞谷)은 웅정동(熊井洞)이라 쓰고 ‘곰이골’이라 부르는 곳이요, 그 안에는 인가(人家)도 7,8호(戶) 있다 합니다.

  그러나 별로 한 경처(景處)가 없다 하므로, 오른쪽 길로 들어서거니와, 이 웅자동과의 합수처(合水處)로 부터는 따로 영시동(永矢洞)이라고 부릅니다.

얼마동안 수림(樹林) 사이와 야전(野田) 곁을 지나서니, 조원봉(朝元峯)을 남(南)으로 안고 조그마한 청용봉(靑龍峯)을 서(西)으로 끼고서 산미(山味)에 야취(野趣)를 구유(具有)한 곳에 고창(古蒼)한 일(一) 암자(菴子)가 섰음을 봄은 물을 것 없이 저 유명한 영시암입니다.

  영시암! 일찍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숙종(肅宗) 15년(서기 1689)에 그 부친(父親) 김수항(金壽恒)이 장사(膓死)를 입은 소위(所謂) 기사화변(己巳禍變)2)을 치른 후로, 당세(當世)에 단심(斷心)하고 산수(山水)를 애상(愛尙)하여, 반도(半島) 성내(城內)의 필천(匹泉) 촌석(寸石)에 그 족적(足跡)을 아니 미침이 없었거니와, 이곳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호산무진(壺山無盡)의 영시암 기(記)에 이른바와 같이, 선생(先生)이 ‘영불출세위서(永不出世爲誓)3)’하는 마음을 품었기로, 그 정사(精舍)의 이름마저 영시(永矢 ; 영원히 맹세(盟誓)한다는 뜻)라 하였습니다.

  진세(塵世)의 명자(名刺)4)을 떨쳐버리고, 이 산으로 들어와, 심산(深山) 춘화(春花)에 그 눈물을 씻고, 유곡(幽谷) 추엽(秋葉)에 그 한(恨)을 붙혀, 오직 부앙(俯仰) 연어(鳶(魚)에 온갖 번뇌(煩惱)를 잊어버리던 그를 생각하매, 오늘까지 웃고 보던 산천의 승경(勝景)이 여기 와서는 눈물로 대하는 슬픔의 산천으로 변해집니다.

  여기서 더욱 생각나는 것은 선생의 노래 ―

 

    오생고무락(吾生苦無樂) 어세백불심(於世百不甚)

    투노설산중(投老雪山中) 성시영시암(成是永矢庵)5)

    고맹실연하(膏盲實煙霞) 계회즉암담(契會卽岩潭)

    언앙사득의(偃仰斯得宜) 고적고소감(孤寂固所甘)

    원지우규주(園池紆規晝) 선유독탐탐(選幽獨耽耽)

    장서유소루(藏書有小樓) 허유만상함(虛牖萬象涵)

    가명고명첩(佳名高明帖) 옥봉엄래참(玉峰儼來叅)

    층성여낭풍(層城與閬風) 품제교이삼(品題較二三)

    유아혹지이(悠我或支頤) 부념기경풍(浮念寄輕風)

    동운응욕산(彤雲凝欲霰) 호기저송남(灝氣著松楠)

    읍피항해정(挹彼抗瀣精) 진흉여토함(塵胸與吐含)

    고기실비박(顧己實菲薄) 청향거무참(淸享詎無慚)

    차아인지반(嗟我仁智伴) 현대막한담(玄對莫閑談)

 

이라 한것을 재삼(再三) 음독(吟讀)하면서, 그를 추모(追慕)하는 때에, 행인(行人)의 마음 또한 외로워짐을 금(禁)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여기다 이 정사(精舍)를 짓고, 6년을 지난 후, 어느날 선생의 식비(食婢)가 이 영시암 뒤에 있는 골짜기에서 범에게 물려간 일이 있어, 선생은 그 인정(人情)을 생각하고, 이곳을 떠나 수춘산(壽春山)6)으로 이거(移居)하였거니와, 지금도 그 동곡(洞谷)을 호식동(虎食洞)이라 부릅니다.

  그 후로는 이 정찰(精刹)이 조잔(凋殘)하여, 지극(枳棘)7)의 황림(荒林) 속에 매몰(埋沒)되고 말았었더니, 설정선사(雪淨禪師)가 이를 슬피여겨 경대부(卿大夫)와 관동(關東)후백(侯伯)이며 기타 공(公)의 덕(德)을 사모하는 성내(城內)의 모든 유석(儒釋)들에게서 구재(鳩財)하여 정사를 중건(重建)하고, 자비성상(慈悲聖像)을 봉안(奉安)하니, 승당(僧堂)이 24간(間)이요, 비각(碑閣)이 1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한참동안은 설정(雪淨)이 이곳에서 혹은 한소(閑嘯)하고, 혹은 철차(啜茶)하고, 혹은 언와(偃臥)하고, 혹은 소요(逍遙)한 위에, 암기(菴記)를 거(據)하면,

    혹식심지인(或息心之人), 만리쟁추(萬里爭趨), 혹양기지사(或養氣之士), 육합운회(六合雲會)8)

라 하였으니, 한참 융성(隆盛)한 시절도 있었든가봅니다마는, 오늘 와서는 또 다시 적막(寂寞)한 폐암(廢菴)이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이를 때, 저 뒷방으로부터 현순백결(懸鶉百結)의 납의(衲衣)9) 노승(老僧) 한분이 눈이 어두워 앞을 더듬어 나와, 우리를 맞아주는데, 그의 법명(法名)을 물으니, 추담(秋潭)이라 합니다.

 

위석격단(危石激湍)의 수렴동(水簾洞)

 

  영시암의 후측(後側)으로 오르다가, 좌로 가는 오세암(五歲菴) 길을 버리고, 우로 총림(叢林)을 헤치며, 약간(若干) 비탈된 언덕을 내려서니, 수백(數百)간(間) 넓은 동천(洞天)이 저 깊은 운무(雲霧) 속에다 그 근원(根源)을 둔채, 한번 극치려(極侈麗)한 일(一)구(區)를 자랑스러이 열었습니다.

  이것이 영시동 웃머리를 이어, 달리 불려지는 수렴동(水簾洞)! 금강(金剛)에서도 수렴동이란데가 있지요마는, 금강에 비긴다면 만폭동(萬瀑洞)과 같은 곳이라, 이 설악에서도 지금부터 오르는 곳이 수석(水石)의 최(最)라 하는 곳입니다.

  난석(亂石)의 등성이를 춤추듯이 뛰어 넘으며 한참 오르니, 큰 계상석(溪床石)과 석벽(石壁) 사이를 파고서, 기승스럽고 기걸차게 소리를 지르며 터져나오는 물이 대연(大淵)을 이루어, 발ㅅ길을 막습니다.

  절벽(絶壁) 위에 울을 두른 송백림(松栢林) 그늘 아래, 긴 구비 짜른 구비로 돌아 오르는 옥류청석(玉流靑石)의 첫 경(景)으로 하여 행인의 막대를 붙들고야 마는 이 담(潭)은, 그 형상(形狀)으로부터 구담(龜潭)이란 명호(名號)를 얻었거니와, 이 담이야말로 설악(雪岳) 심장(心臟)이라 할 이 수렴동의 첫 문(門)이라 하겠습니다.

  이 구담을 지나서면서부터 돌은 더욱 위(危)하려하고 물은 다시 격(激)하려하여 옛, 사람이 흔히 일컫던 위석(危石) 격단(激湍)이야말로 다른 아무데보다도 여기 이것이 그것일줄 압니다.

  먼지와 티끌로 겹겹이 묻혔던 이막(耳膜)에도 이 시원한 자연의 소리는 울리고야 맙니다. 진실로 곤비(困憊) 조잔(凋殘) 이러한 종류의 말로 밖에 다시 더 말할수 없는 나련한 내 영혼(靈魂)을 대번에 훌쩍 일으켜,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근기(根氣)와 여태도 흐리지 않은 내면(內面)이 있음을 스스로도 경이(驚異)롭게 깨닫고, 광희(狂喜)에 뛰고 굴도록 하는 구원(久遠) 신성(神聖)의 묘약(妙藥)이 곧 ‘자연의 소리’ 이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차차 물소리는 엷어가고, 그 대신 어디로선지 향풍(香風)이 별로 시원히 가슴속까지 맑혀듭니다.

  이건 또 무슨 연고(緣故)인고 하였더니, 과연 계복(溪腹)에 우뚝 세워진 천성(天成) 석조(石造) 향탑(香塔)이 이름 모를 무슨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불(佛)이 법화(法華)의 묘리(妙理)를 설(說)하실ㅅ적에 그 불설(佛說)의 진실함을 대중에게 증명(證明)하려고 지하로서 용현(湧現)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의 전신(全身) 사리(舍利) 봉안탑(奉安塔)은 그 어떠한자이었든지, 이 탑도 인공(人工)이라고는 손톱 하나도 들지 않은 지하(地下) 용현(湧現)의 자연탑인데, 이것은 무엇을 위하여 이루어진 탑인지요.

  여러 층을 이루었건만, 단 일(一)괴(塊)의 암석인 이 천조(天造)의 탑대(塔臺)는, 인생은 그르되 자연은 옳으심을 증명하고자 위한것이 아니오리까.

그 선(線), 그 색채, 그 안배(按排), 그 표현, 그 기교, 그 정신, 그 의도, 그 모든 점으로 보아 간곳마다에서 오직 황홀(恍惚)과 무언(無言)으로써 대할뿐인, 풍우(風雨)의 예술적 기교도 여기 이 탑에, 와서는, 그 너무나 지극한 것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 증오(憎惡) 시기(猜忌)의 념(念)을 일으키게 하는바 있습니다.

 

    불설(佛說)이 진실(眞實)하자 다보탑(多寶塔)이 솟으시니

    자연(自然)의 옳으심을 천조탑(天造塔)이 보이시니

    우중(愚衆)도 이 앞에서야 아니 믿고 어이리.10)

 

  여기서 얼마쯤 더 올라가매, 동곡(洞谷)의 정중앙에 돌올(突兀)한 일(一)봉(峰)이 그 미려(美麗)한 양자(樣姿)를 자랑하는자가 있으니, 이는 옥녀봉(玉女峰)입니다.

  이 옥녀봉은 그 위치로나 그 모양(貌樣)으로나 그 기품으로나 이 동곡에 단연 여왕으로 군림(君臨)한줄을 의심하지 못하겠습니다.

  너나없이 모든 행인이 이 앞을 지나면서는 한번 첨앙(瞻仰) 탄미(嘆美)하지 않는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얼마쯤 더듬어 오르니, 점심청(點心廳)이라는 넓은 반석(盤石)을 지나 상중하(上中下) 삼수렴(三水簾)이라는 명자(名字) 그대로의 수렴(水簾) 세채가 걸렸습니다.

  수렴 속에 어느 옥녀가 들어 게신지는 모르거니와, 먼 후일 저 수렴이 걷히기 전에는 그의 얼굴을 세상이 못 볼것이니, 저 속에 들어있는 옥녀의 그 품은 회포(懷抱)! 너무나 깊은줄도 알겠습니다.

  아니, 진환(塵寰)에 무엇이 그리워 저 수렴(水簾)을 걷고 나오리이까.11)

 

(다음호에 계속)

~~~~~~~~~~~~~~~~~~~~~~~~~~~~~~~~~~~~~~~~~~~~~~~~~~~~~~~~~~~~~~~~~~~~~~~~~

옮긴이 주석)

1) “나는 것이란 한 조각 뜬 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 꺼짐이거니/ 뜬 구름 그게 본시 실상 없는 것/ 나고 죽고, 가고 오고 같은 거라네.”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06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임종시에 제자들에게 들려준 임종게(臨終偈)라고 전해지는 글이다.

2) 기사화변(己巳禍變) :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고도 함. 조선 숙종 15년(1689년), 장 희빈(張禧嬪)의 아들이 왕위 계승의 후계자로 지명되자 이에 반대하는 송시열((宋時烈), 김수흥(金壽興), 김수항 등 서인(西人)이 사사(賜死)․유배(流配)되는 한편, 민비(閔妃)는 폐출(廢黜)되고 장희빈이 정비(正妃)로 되고 남인(南人)이 득세(得勢)를 하게 되는 사건. 김수항은 서기 1680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이 사건으로 진도(珍島)에 유배된 후 사사(賜死)되었다.

3) 영원이 출세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마음 - ‘노산산행기’(상동, p.108)

4) 명자(名刺) : 성명, 주소, 직업, 신분 따위를 적은 네모난 종이쪽. = 명함(名銜), 명첩(名帖), 명편(名片)

5) “괴로운 내 일생 즐거움 없어/ 세상에 온갖 일 뜻 같지 않아. 늙어 설악산에 몸을 던져서/ 여기에 영시암을 지은 것일세” - ‘노산산행기’(상동, p.108~109)에는 이 두 줄의 문구만 기록하고 있다.

6) 수춘(壽春)은 춘천(春川)의 옛지명

7) 지극(枳棘) : 가시덤불

8) “혹 마음 안정시키려는 이들이 먼 길에서 달려오고 또 혹 기운 기르려는 선비들이 널리 모여들었다” - ‘노산산행기’(상동, p.109~110)

9) 현순백결(懸鶉百結)의 납의(衲衣) : “누더기 같은 누비옷을 입은” - ‘노산산행기’(상동, p.110)

10) ‘노산산행기’(이은상 저, 상동) p.112에는 “엎디어 절하올 밖에/ 백 번이고 절하올 밖에”로 쓰고 있다.

11) ‘노산산행기’(이은상 저, 상동) p.113~p.114에 다음 문장으로 “물구슬 발을 엮어/ 임의 방에 드리웠네/ 저 속에 앉으신 임/ 얼마나 어여쁠꼬/ 만나려 애태우건만/ 내다보니 아니 보시네./ 발 속에 앉으신 임/ 고요히 이르는 말/ 눈물에 젖은 땅을/ 무삼 일 내다보리/ 나그네 하소연 있거들랑/ 말만 전코 가게나.”가 수록되어 있다.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