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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5회

박주화 2012. 1. 21. 14:56

(사)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2009년 5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15회)

설악행각(雪嶽行脚) (15)

노산 이은상

쌍룡폭(雙龍瀑)의 번화(繁華)한 가문(家門)

 

  영시암(永矢菴)에 있는 삼연(三淵)선생 유적비(遺蹟碑)를 보면, 이 수렴동(水簾洞) 중에 일(一) 소가(小架)를 맺고 가로되, 멸경(滅景)이라 하였더라 했건마는, 오늘은 그 자취마저 물을 길이 없어졌거니와, 과시 이곳을 금강(金剛)의 만폭동(萬瀑洞)에 비기고보매, 보덕굴(普德窟) 같은 집이 그리운것도 사실입니다.

  무론(毋論) 순결한 자연만으로 족합니다마는, 때로는 인공도 그 자연을 상하지만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자연과 융화(融和) 상조(相助)하여, 더 빛나는수도 없지 않은 것입니다.

  저기 저 조그마한 폭포(瀑布)! 하며, 가지고 놀고싶다 하자, 다시 보니, 저기 저 잔잔한 계류(溪流)! 하고 누워보고도 싶습니다.

  평평한 반석이 되면, 물도 잠깐 그 재주를 감춰버리고 무미(無味)하게 흐름 같으나, 실상인즉 다음 곡예(曲藝)에 할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아, 아니, 무심하게만 흐른다 할찌라도, 또 무슨 기재(奇才)를 보이려노 하고 주의하도록 남의 눈을 붙들은 그대로 좀체 놓아주지 아니합니다.

  소허(少許)에 동곡(洞谷)의 우협(右脇)으로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큰 동곡(洞谷)이 내려와 합수(合水)를 이룬 곳을 만나니, 마치 만폭동이 별지(別支)로 열려있음과 같습니다.

  이 백운동으로 들어서면, 거기에 또 다시 지동(支洞)이 분파(分派)되어, 우(右)를 곡백운(曲白雲)이라 하고, 좌(左)를 직백운(直白雲)이라 하며, 직백운의 끝은 다시 제단곡(祭壇谷)으로 이어 들었다 하매, 이는 무론(毋論) 고신도(古神道)의 유적을 지닌 곳일것입니다. 그러나 대원(隊員)의 반수 이상이 노숙(露宿)을 불가(不可)하다 하므로, 부득이 이 백운동 탐승(探勝)을 못하거니와, 지로인(指路人)의 말에 의하면, 백운동에도, 이 수렴동에 불부(不負)할 경(景)이 무수(無數)하다 합니다.

  우리는 마침내 동곡의 본간(本幹)으로만 밟아 가거니와, 이 합수처로부터는 다시 동명(洞名)을 바꾸어 쌍폭동(雙瀑洞)이라 부릅니다.

  여기서부터는 한층더 수성(水聲)이 요란(擾亂)스럽고, 그 흐르는 모양조차 호기(豪氣)를 부립니다. 혹은 좌로 거암(巨岩)을 굴려버릴듯이, 혹은 우로 장송(長松)을 꺾어버릴듯이, 무에 이다지 급한지 호령(號令)이 추상(秋霜)같으면서, 휘우듬한 구비도 미쳐 돌아갈 겨를이 없다고 바위 바닥을 바로 실러 넘어 달려 바삐 쏘아 흘러 내리는 물이, 어찌 보매 수선스러운것 같건만, 어이 중간(中間)에 얼떨떨하였던 사람은 나이었던줄을 나중에야 깨닫고 눈을 다시 떠 보매, 과연 일보(一步) 십경(十景)의 황홀(恍惚)한 경(景)이 여기 아니고 또 어디 있으오리까.

  천석(泉石)의 구경에 아직 덜 익은 눈이라 그런지, 진실로 벅찬줄을 깨달을 곳이 여기고 보매, 분량(分量)에 넘침이 오히려 불만스럽고 원망스럽다 하겠습니다.

  대관절 제각기 호기를 부리고 오만(傲慢)하기 그지없는 이 ‘젊은 물’들이, 사람으로 치면 백마(白馬) 금편(金鞭)으로 장안(長安) 대도(大道)를 쓸어가는 귀공자와 같은 이 ‘코 높은 물’들이 대체 무얼 등대고 누구를 믿고 이같이 야단인고 하였더니, 과연 어허, 어허! 를 연발하고야 마는 용손폭(龍孫瀑), 용아폭(龍兒瀑), 쌍룡폭이 동부(洞府)를 가로막고, 내 앞에서는 김모(金某) 이모(李某) 누구나 다 나볏들하라는 벽력(霹靂)같은 호령(號令)을 내립니다.

  어허! 과연 명문거족(名門巨族)이오이다. 밑으로서 첫 번 만나는 용손폭만도 그 위엄이 이를 곳이 없는데, 다시 그 덜미 위로 떨어지는 용아폭과 삼각담(三角潭)의 웅장함을 무엇으로 견주오리까.

  더구나 최고 일담(一潭)에 양지(兩支)로 떨어지는 쌍룡폭이야 거의 신엄(神嚴)한 존재로 안 볼 도리가 없습니다.

  우자(右者)는 그 웅(雄)1)으로 고(高)가 1백5십척(尺)인데, 청봉곡(靑峰谷)으로서 흘러오는 물이요, 좌자(左者)는 그 자(雌)2)로 높이가 70척인데, 봉정동(鳳頂洞)으로서 흘러오는 물입니다.

  대안(對岸)의 천장(千丈) 석병(石屛)은 상암(裳岩)이라하고, 자룡(雌龍)의 내실(內室)이라 부릅니다. 그리고보매, 이 무엄한 행인(行人)이 남의 내실에까지 들어온 셈입니다.

  여하간(如何間) 자자손손이 가문(家門) 번화(繁華)한 세도(勢道) 재상(宰相)의 집을 찾아듬만 같습니다. 어찌 여기 부러움이 없으리까. 어찌 여기 예찬(禮讚)이 없으리까.

 

    쌍룡(雙龍) 저 두 어른 어느적에 만나신지

    백자(百子) 천손(千孫)을 무릎 아래 두시고서

    상기도 사랑이 넘쳐 어개 겯고 웃으시오.

 

    가련(可憐)한 인생(人生)들은 청춘(靑春)에 삽시언만

    이 두분 천만년(千萬年)에 늙음을 모르고서

    만날 때 부르던 노래 이제토록 부르시오.

 

    저 밖에 봉자인손(鳳子麟孫) 인물도 잘나시고

    학덕(學德) 높은이에 지예(枝藝) 또한 능(能)한이에

    이 세상 어느 뉘게도 모자랄것 없소이다.

 

봉정동(鳳頂洞)의 구곡담(九曲潭)

 

  성창산(盛昌山)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3)를 거(據)하면, 이 쌍룡폭 중의 우자(右者)인 웅폭(雄瀑)을 넘어 청봉곡(靑峰谷)으로 들어서면,

    ‘복유삼폭(復有三瀑), 비류공몽(飛流空濛), 자취무제(紫翠無際), 연등이서(緣磴而西), 시저담즉(始抵潭側), 담왕연가백문(潭汪然可百聞), 일위하담(溢爲下潭), 담역여지(潭亦如之), 상방하규(上方下圭), 하담우일위난폭(下潭又溢爲亂瀑), 소견부지위십이야(所見不止爲十二也)’4)

라 한만큼, 또한 천석(泉石)의 승(勝)이 별유(別有)한 모양이요, 또 이곳을 일러, 문헌(文獻)에는 토인(土人)이 대개 십이폭(十二瀑)이라 한다 하였거니와, 이 십이폭의 경(景)은 노숙(露宿) 불능(不能)으로 보지 못함이 심히 유감(遺憾)입니다.

  우리는 부득이 좌폭(左瀑)의 골짜기인 봉정곡(鳳頂谷)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이 쌍폭(雙瀑)의 웅장(雄壯)한채 다정(多情)스러히 같이 떨어지는 것을 돌려다보매,삼연(三淵)의 쌍폭시(雙瀑詩)인

 

    홍삽정중원대음(虹揷井中元對飮)

    노등운제개고비(鷺騰雲際豈孤飛)

    용당낙세쟁형장(舂撞落勢爭衡壯)

    요조래원일체비(窈窕來源一體肥)5)

 

란것이 입 밖으로 불려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자연(自然) 묘사(描寫)에 그 진묘(眞妙) 절등(絶等)한자를 아직 찾지 못함을 심히 안타까이 여기는자라, 과연

    시가사폭고래희(詩家寫瀑古來稀)

    사차우기숙발휘(似此尤奇孰發揮)6)

라 함직하다 하고 생각하매, 사람의 재주가 천교(天巧)에 비겨 너무나 떨어짐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집니다.7)

  여기서부터는 동곡(洞谷)이 차차 컴컴해갑니다.

  위장(危障)은 검발(劍拔)하고, 비천(飛泉)은 격토(激吐)하여, 황험(荒險)이 한층더 심(甚)한것이 20명(名) 1대(隊)언마는, 단둘같이 적어보입니다.

곳곳이 ‘어흥’한 선소(仙巢) 귀굴(鬼窟)이 공연히 무시무시하여, 어째 이 골짜기에는 진인(塵人)의 참람(僭濫)한 출입을 잘 용서(容恕)해주지 않는 곳인양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봉정곡(鳳頂谷)에 구곡담(九曲潭)의 이름이 있음을 생각하면, 전인(前人)이 안 다님도 아니었던 것이니, 마음놓고 가보리까.

  그리고보매, 언제 어느결에 포수의 곁으로만 다가 붙어가는 우리의 꼴이 스스로 우습고도 가련(可憐)합니다.

  그러나 충신(忠臣)이 아닌 저로 어복리(魚腹裡)에 장(葬)함을 웃고, 듣는이의 귀에는 은사(隱士)도 아닌 것이 호복리(虎腹裏)에 장(葬)한다 함도 또한 웃으울 일이 아니겠습니까.8)

  경무호야(竟無虎也)9) !

  뿐만 아니라, 어둠침침한 두어 구비를 지나고나니, 이제는 다시 “엄용학석(掩舂壑石) 백말측주(白沫側酒)’10)를 글짜대로 보이는 곳에 신부(神膚)의 상철(爽澈)11)함을 새삼스러이 느끼게 됩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갔던 노래도 다시 날개 돋혀 하늘 밖에 날아 나오고, 눈썹 속으로 숨어 버린 웃음도 활개 들어 얼굴 위에 춤추는 줄을 스스로 깨닫거니와, 여기가 대체 어디오? 하매, 방원폭(方圓瀑)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방원폭이 구곡담 중 제1담(潭)이라 합니다.

  폭포는 그리 웅장하지는 못하나, 여기서는 폭포보다, 얼른 보면 원형(圓形)이로되, 다시 보면 정사각형(正四角形)인 담이 별관(別觀)이라면 별관이라 하겠거니와, 과연 그 이름의 방원은 잘 얻은 이름입니다.

 

    둥근채 모나시고 모난채로 둥그시니

    ‘둥글’다 말하리까 ‘모’라 말씀 하오리까

    둥근지 모나신지를 나는 미처 모릅니다.

 

    둥글게 보이오니 둥글줄로 믿으리다

    모나다 하오시니 모난줄로 아오리다

    둥그나 모나나ㅅ간에 임으로만 섬기리라.

 

    둥글어 계옵소서 모나셔도 계옵소서

    모만은 마옵소서 둥금만도 마옵소서

    둥글고 모나신 후제야 쓰을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르며 돌며 헤아려 가는 구곡담이 제1담인 방원폭 이외에는 하나도 그 이름을 얻지 못하고, 다만 ‘둘째소’ ‘셋째소’라고만 불려지고 있음이 섭섭합니다.

  제4곡담을 지나선 때에 좌편으로 보이는 사자암(獅子岩)은 다시 더 잘 형용(形容)할 수 없는 사자요, 제9곡담의 우편으로 대석(大石) 계단을 이룬 백단대(百段臺)는 또한 문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백단대 위로 올라가보면, 과연 무슨 신전(神殿)이 거기에 놓였을는지, 천년 창태(蒼苔)가 인간의 발붙임을 허락하지 않으니, 또한 한(恨)스러운채 어쩔 길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얼마만에 물 소리 끊이는 초로(草路)로 들어서니, 황혼은 어느덧 앞길을 흐려놓습니다.

  좌로 우로 형극(荊棘)을 헤치며, 소위(所謂) 산행 속담(俗談)의 오각무(五脚舞)를 추어, 가까스로 한 언덕을 기어 오르니, 바람 소리, 물 소리 구슬피 울리는 이 황혼(黃昏)의 깊은 동곡(洞谷)을 내려다보고 앉은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을것없이 봉정곡(鳳頂谷) 상(上)의 봉정암(鳳頂菴)입니다.

  암(菴)을 정중앙에다 놓고, 후면은 괴암(怪岩) 기봉(奇峰)으로 둘렸는데, 암의 우편인 동측의 것은 기린봉(麒麟峰), 할미봉, 범바위라 하고, 거기 이어 암(菴)의 좌후(左後)인 북측의 것은 독성나한봉(獨聖羅漢峰), 지장봉(地藏峰), 가엽봉(迦葉峰), 아난봉(阿難峰), 그 다음으로 가장 굉걸(宏傑) 장대(壯大)한 거암(巨岩)을 석가봉(釋迦峰)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지점(指點)하는 이름을 듣고보매, 암(菴)의 동후측(東後側)의 반부(半部)와 북후측(北後側)의 반부가 같이 한 개의 연봉(連峰)이면서도, 그 명호(名號) 계통(系統)은 호상(互相) 판이(判異)한것임을 발견하고, 재미있게 생각합니다.

  기린이니 할미니 하는 형사적(形似的) 명칭은 토인(土人)의 순수한 머리로부터 불려진자이요, 독성지장, 가엽, 아난, 석가 등 불교적 명칭은 무론 승려(僧侶)의 종교적 머리로부터 불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면 이렇게도 반부반부(半部半部)씩 그 세력이 한 자리에서 갈려있는가 하고 생각하매, 이상할 것 없는채로 이상하지 않은바도 아닙니다.

  그는 여하간(如何間)에, 다시 바라보매 형사적(形似的) 명칭이야 본시부터 형사(形似)를 위주(爲主)한것이매, 더 말할것이 없으려니와, 승려들의 암상(岩相) 보는 눈도 어지간한줄 알겠습니다.

  과연 독성나한봉이란 것은 그 괴상한 성미를 바로 보였고, 지장봉도 ‘지옥문전누불수(地獄門前淚不收)’하는 자비심이 그 얼굴에 띠어졌거니와, 석가봉을 향하여 연방 무슨 협의를 들어드리는 것 같은 것을 용하게도 가엽봉이라 한것이며, 당시 천이백 대중(大衆)에서도 가장 미남(美男)이더라는 격(格)으로 무척 잘 생긴 1암을 또한 아난봉이라 한것이며, 석가봉은 또 그대로 암(岩)중 성자(聖者)라 할만한 수천척(尺), 수십간(間)의 거암인것이 잘도 맞게 그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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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석)

1) ‘바깥 어른’(男性)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16

2) ‘안 어른’(女性) - ‘노산산행기’(상동) p.117

3)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1760~1839)이 엮고 서유구(徐有榘)가 교사(校寫)한 것을 1909년(융희 3년) 경성외국어학교 교우회에서 간행했다. 경도(京都)․기로(畿路)․해서(海西)․관북(關北)․관서(關西)․호중(湖中)․호남(湖南)․영남(領南)․관동(關東) 등 9구역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활자본. 1책.

4) ‘다시 또 세 폭포가 있어, 날리는 물이 연기를 뿜어 자줏빛 푸른 빛이 끝이 없는데, 바위 등성이를 타고 서쪽으로 오르면 못 곁에 닿는다. 못에는 물이 넘실넘실 한 백간이나 됨직하고 그 물이 넘쳐 아랫못이 되는데 그것 또한 그와 같다. 위엣 것은 반듯하고 아랫 것은 모가 났는데, 아랫못이 또 넘쳐서 여러 폭포들이 되어 보기에 열 두어 개도 더 됨직 하다.’ - ‘노산산행기’(상동) p.118

5) ‘무지개 꽂힌 우물의 가장 가운데에서 마주대하고 술을 마시는데/ 해오라기(백로) 날아 구름 사이로 어찌 외로이 나르나/ 찧고 부딪치며 떨어지며 기세를 가름하여 싸우다가/ 조용하고 그윽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 몸 되어 두터워지네’ (옮긴이 해석)

6) ‘시인이 폭포를 묘사한 것은 옛부터 드물었으니/ 이 곳같은 뛰어난 기이함을 누가 떨쳐서 드러내리’ (옮긴이 해석)

7) ‘노산산행기’(상동) p.119에는 이부분을 생략하고 ‘지나갑니다.’로 축약하여 놓았다.

8) 어복리(魚腹裡), 호복리(虎腹裏) = 물고기의 배 속, 범의 배 속

9) 결국 범은 없었습니다.

10) 물은 확을 찧고 소리는 골을 울리고 물연기 흩뿌리는 - ‘노산산행기’(상동) p.120

11) 신부(神膚)의 상철(爽澈) = 정신과 몸이 시원하게 맑아지다. - ‘노산산행기’(상동) p.120에는 ‘몸 채 정신 채 쇄락해짐’이라 쓰고 있다.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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