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18회) - ‘09.8월호
설악행각(雪嶽行脚) (18)
노산 이은상
설악산(雪岳山)계(系)의 시비(是非)
하청봉(下靑峰)에서 약 40분을 비(費)하여 상청봉(上靑峰)에 오르니, 최고 지점에 오르기가 무섭게 장풍(長風) 한줄기가 간장(肝臟) 속까지 파고 들어옵니다.
봉두(峰頭)에 오르는 길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어허! 저 동해(東海)입니다. 망망(茫茫)한 무변대해(無邊大海)를 바라보는 때에, 수천공장(水天共長)한 그 속으로 내 몸과 내 마음이 다 따라서 들어가는 듯함을 느낍니다.
나는 지금 기쁜지 슬픈지를 모르겠습니다. 내 스스로 내 정(情)을 판단할 길이 없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동안, 이 위대한 자연에 도취(陶醉)된 것이 분명합니다.1)
저 해변으로는 좌로부터 거진(巨津), 속초진(束草津), 대포(大浦), 낙산(洛山), 양양(襄陽), 강릉(江陵) 등 촌읍(村邑)이 1자(字)로 늘어섰는데, ‘저기는 인간(人間)이구나’하고 생각하매, 못 깨닫던 번뇌(煩惱)가 다시입니다.
왜 나는 이 청봉상(上)의 장엄한 자연 속에서 눈물 지우며 울어야 합니까. 지금 이 순간 터져나오는 내 슬픔 속에는 ‘사람’된 슬픔도 있습니다. ‘우리네’된 슬픔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된 슬픔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슬픔을 참지 못하여, 위대한 자연 앞에 나와, ‘곡(哭)’으로 내 뜻을 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2)
다시 고개를 돌려 서북(西北)간(間) 아득한 구름 밖에 높이 솟은 봉을 바라봅니다. 저것이 금강산(金剛山) 비로봉(毘盧峰)! 비로(毘盧)의 고거(高距)는 1638미(米)3), 여기 이 청봉의 고거는 1708미(米)니, 청봉이 약 70미(米)나 더 높은 셈입니다.
그러나 여하간 양봉(兩峰)이 서로 높이 솟아올라, ‘장훈’ ‘멍훈’4)을 맞 부르고 있습니다. 서남(西南)간(間)으로 초피곡(貂皮谷)5) 넘어 향로봉(香爐峰), 그 가까이로는 오색령(五色嶺), 백운동(白雲洞) 뒷봉(峰) 등(等) 소위(所謂) 설악 1만봉이 무릎 아래 깔렸습니다.
나는 여기 심안(心眼)을 열고 반도(半島)의 지리(地理)와 아울러 이 설악의 산맥(山脈)을 생각합니다.
이 설악산은 소위(所謂) 동부(東部) 백두(白頭) 대간(大幹)에 속(屬)하거니와, 이 산의 산맥 계통에 대하여 고래(古來)로 다수(多數)한 학자들이 백두를 조종(祖宗)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무론(毋論) 고래의 제설(諸說)로 말하면, 이 설악뿐이 아니라, 반도의 전(全)산맥(山脈)이 오직 백두로서 나왔다고 하는것이며, 더욱이 남사고(南師古)6) 같은이는, 반도의 산맥뿐 아니라, 해중(海中)으로 은복(隱伏)하여 제주도(濟州島)의 한라산(漢拏山) 및 일본도(日本島)의 제산(諸山)에까지 급(及)하였다 하였고, 이수광(李睟光)7)도 그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차설유리(此說有理)8)’라 하여, 동견(同見)인 뜻을 말했습니다.
혹은 지금의 선배(先輩) 중에 이 강원도의 제산 특히 설악 같은자는 백두(白頭) 간지(幹支)가 아니라, 다시 가까이 말하자면, 금강(金剛)으로부터 남하(南下)한것이 아니라, 산맥의 형세(形勢)가 태백산(太白山)으로부터 북진(北進)하여, 말하면, 설악이 금강을 향하여 흘러 들어갔다는 이설(異說)을 말하는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악의 산맥에 대하여, 나는 남하설(南下說) 북입설(北入說)을 시비(是非)하려고 아니합니다.
다만 지금 이 청봉 위에 높이 서서, 구름을 뚫고 멀리 아득히 이 취미진진(趣味津津)한 반도의 산맥을 보는듯이 생각할 때에, 내 가슴은 무한한 강개(慷慨)에 그득해있을 뿐입니다.9)
묘고봉두(妙高蜂頭)에 서서
이 청봉(靑峰)의 명칭에 관하여서는 한 개의 의심이 없지 않습니다. ‘설화산인(雪華山人) 무진자(無盡子)’의 오세암(五歲菴)사적기(事蹟記)를 거(據)하면, 이 봉명(峰名)을 청봉이라 하지 않고, ‘…묘고봉명왈봉황대(妙高峰名曰鳳凰臺)10)’라 하였으며, 기타 제기(諸記)는 다 봉정(鳳頂)이라고만 썼습니다.
다만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만에서 지금 속칭(俗稱)의 청봉이란 자면(字面)을 보는것인데, 동인(同人)의 동기(同記) 중에서도 ‘봉정즉악지극처(鳳頂卽岳之極處)11)’라는 것이 있음을 보면, 봉정(鳳頂)이라고도 하고 청봉(靑峰)이라고도 하는듯이 보입니다.
나는 여기서 중요한 일사(一事)를 또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봉명이 본시 고호(古號)로는 ‘봉정’도 아니요, ‘청봉’도 아니요, 우리말로 ‘볼메12)’라고 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봉(鳳)의 우리말이 ‘부리’ 즉 ‘불13)’이라 하였던 것은 일찍 필자가 다른 곳에서 말한 것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겨레의 고신앙(古信仰)이었던 광명(光明)을 표상한 말의 이 ‘불’을 한자로 대역할 때에 도처(到處)의 산악마다 대개 ‘봉(鳳)’자를 쓰기도 하였고, 또 여기서는 ‘불’의 근사음(近似音) ‘푸르’의 ‘청(靑)’자로써 역하게도 된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묘고(妙高)의 일봉(一峰)을 ‘봉황대’ ‘봉정’ ‘청봉’ 등 무어라고 하든지, 그것이 우리 고신앙의 근축(根軸)이었던 ‘광명14)’이란 그것 하나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것인줄 알면 그만일 것입니다.15)
혹은 이 ‘봉정(鳳頂)’의 자의(字意)를
오불주처(吾佛住處), 수처염이상정(雖處染而常淨), 고유명이설(故喩名以雪), 중생화현(衆生化現), 필수기이즉응(必隨機而卽應),
고비록황봉(故比鹿況鳳), 이불동언(以不動言), 의산악이고인(疑山岳而高仁), 방원정이유적(倣苑頂而幽寂) 운운(云云)16)
이라(봉정사적기(鳳頂事蹟記)) 한것이라든지, 또는 ‘청봉(靑峰)’의 자의(字意)를
원견지표묘이청(遠見只縹緲而靑), 고지기절정(故指其絶頂), 이명왈청봉(而明曰靑峰) 운운(云云)17)
이라 (성창산(成昌山)) 한것18) 등은 그 어느것이나 다 문자(文字)에 집착(執着)되어 해석(解釋)을 위한 해석에 불과하는 한 개의 억설(抑說)이요, 전회(傳會)임이 틀림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거의 결정적으로 생각할 것은 백두산상 ‘천지(天池)’의 ‘천’이니 지리산상 ‘천왕봉(天王峰)’의 ‘천왕’이나 금강산, 묘향산(妙香山)의 최고봉(最高峰)명(名)인 ‘비로봉(毘盧峰)’의 ‘비로’나, 여기 이 설악산 묘고봉(妙高峰)의 ‘봉정(鳳頂)’의 ‘봉’ 또는 ‘청봉(靑峰)’의 ‘청’이 그 표시된 한자로는 다 다른것일찌로되, 그 어의(語義) 즉 자면(字面)의 옷을 벗기고 들여다보는 그 알맹이의 몸뚱이는 서로 추호(秋毫)의 차이도 없는 ‘광명19)’ 그것뿐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더욱이 여기 이 최고 정상에 어느 후손(後孫)의 치성(致誠)으로인지 제당(祭堂)을 모셔놓은 것이 있습니다.
듣건대 증왕(曾徃)에는 상하(上下) 양봉(兩峰) 사이에 규모(規模)도 적지 아니한 번뜻한 당우(堂宇)가 있었다고 합니다마는, 지금은 터만 남았을뿐이요, 그 대신 이 상봉(上峰) 최고 정상에 돌담으로 두르고 기와로 덮은 조그마한 제단(祭壇)이 있거니와, 단상에 세워놓은 위비(位碑)에는 한가운데 ‘설악산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岳山峰 國司天王 佛神之位)’라 썼고, 좌(左)에는 소자(小字)로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 山神 中道神靈)’이라 썼으며, 우(右)에서 역시 소자(小字)로 ‘설악산신령(雪岳山 神靈)’이라 썼습니다.
무론(毋論) 현대의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것을 볼 때, 여기에 엎드려 이마를 조아려야 할 의무도 없고, 이것을 신앙하지 않으면 안될 아무런 필요도 느껴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겨레의 지나온 길을 더듬는 동시에 이 겨레가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를 이것으로 말미암아 생각해야 할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20)
산상에 높이 올랐을 때, 사람마다 그 생각하는 것이 다를것은 무론(毋論)입니다. 그러나 저 홍진만장(紅塵萬丈) 속에서 헤매고 싸우는 현실 지옥의 비참한 창생(蒼生)을 생각함과, 다시는 같은이 없는 자기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생각함에는 거의 일치할 줄 압니다.
「여기서 자기만을 말한다 하면, 그 사람을 일러 개인주의자라 말할것인지, 여기서 일보 나아가 민족을 말한다 하면, 그 사람을 일러 민족주의자라 말할것인지, 아니, 여기 서 일보 더 나아가 창생을 말한다 하면, 그 사람을 일러 세계주의자라 말할것인지,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21)
나는 지금 이 미고(彌高) 숭엄(崇嚴)한 극처(極處)22)에 올라, 저 운무층(雲霧層) 아래로 만학천봉(萬壑千峰)을 내려다보고, 멀리 일망무제(一望無際)한 동해를 가슴에 안고 있어, 인간의 고뇌(苦惱)를 밖에서 들여다보는 듯이 생각할 때, 한줄기 열누(熱淚)가 내 손등에 떨어짐을 금(禁)할수 없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
1)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36에는 이 문장 다음에 “청봉에 올라 서니/ 청봉은 되레 어디로 가고/ 동해만 바라뵈네/ 예가 지금 어디멘지!/ 멍하니 어리둥절해/‘장승’처럼 섰소이다”의 시를 수록하였다.
2) ‘노산산행기’(상동) p.137에는 이 문장 다음에 “청봉에 올라 서니/ 이윽고 눈물이 듣네/ 즐거운 강산을 찾아/ 그대 왜 슬프다는가/ 강산에 호소하는 심정/ 이 나라 사람이면 아시오리다.”의 시를 수록하였다.
3) 미(米) : 미터(meter)의 한자어
4) ‘장훈’ ‘멍훈’ = ‘장군’ ‘멍군’
5) ‘노산산행기’(상동) p.138에는 ‘조핏골’(貂皮谷)로 씀.
6) 남사고(南師古, 1509~1571)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 영양(英陽). 호 격암(格庵). 효행과 청렴으로 이름났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다. 역학(易學)·풍수(風水)·천문(天文)·복서(卜筮)·관상(觀相)의 비결에 도통하여 예언이 꼭 들어맞았다고 한다. 풍수학(風水學)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문집에 《격암일고(格庵逸稿)》가 있다.
7) 이수광(李睟光, 1563~1628) : 조선 중기의 명신. 본관 전주(全州). 자 윤경(潤卿). 호 지봉(芝峰). 시호 문간(文簡).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와 병조의 좌랑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지방에서 큰 공을 세웠다. 주청사로 연경에 내왕,《천주실의》등을 들여와 한국 최초로 서학을 도입했다.《지봉유설》로 서양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했다.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영의정이 추증됐다. 저서에 《지봉집》,《채신잡록(採薪雜錄)》등이 있다.
8) 이 말이 유리하다. 즉, 남사고의 백두에서 시작하여 한라산을 지나는 대간에 동의한다는 뜻.
9) ‘노산산행기’(상동) p.139에는 이 문장 다음에 “청봉에 올라 서니/ 남북강산 느꺼워라/ 뒤로는 백두 금강/ 앞으로는 태백 지리/ 이게 다 내거라시네/ 한 가슴에 안았소그려.”의 시를 수록하였다.
10) 가장 높은 봉의 이름은 봉황대 - ‘노산산행기’(상동) p.140
11) 봉정은 산이 끝나는 곳 - ‘노산산행기’(상동)
12) ‘레’ - ‘노산산행기’(상동)
13) ‘’ - ‘노산산행기’(상동) p.140
14) ‘’ - ‘노산산행기’(상동) p.141
15) ‘노산산행기’(상동)에서 이 문장 다음에 “다시 말하면 한문글자로 ‘봉정(鳳頂)’이라 쓰는 ‘부리뫼’나 ‘청봉(靑峰)’이라 쓰는 ‘푸르뫼’나 모두 가 ‘뫼’(광명산(光明山))임에 틀림 없는 것입니다.”를 수록하였다.
16) “산의 최고봉이 높고 어질기 때문에 쓴 글자라는 등” - ‘노산산행기’(상동)
17) “멀리서 보면 퍼렇게 보이기 때문에 쓴 글자라는 등” - ‘노산산행기’(상동)
18)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19) ‘’ - ‘노산산행기’(상동) p.141
20) ‘노산산행기’(상동) p.142에는 이 문장 다음에 “‘’(광명(光明))이라는 우리 겨레의 움직일 수 없는 근본신앙 그것 말씀입니다. ‘광명정대’생활 이념이 그것이요, ‘자유평화’의 민족신조가 그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길이요, 우리 생명인 것만은 알아야겠다는 말씀입니다.//청봉에 올라 서니/ 막혔던 가슴 열리는구려/ 마음의 제단 위에/ 불을 다시 밝혔거니/ 우리 님 훤하신 얼굴/ 저만 바라고 사오리다.”를 수록하였다.
21) ‘노산산행기’(상동) p.143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음
22) ‘높고 엄숙한 지극한 곳’ - ‘노산산행기’(상동) p.143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6회 (0) | 2012.01.21 |
|---|---|
|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7회 (0) | 2012.01.21 |
|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9회 (0) | 2012.01.21 |
|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20회 (0) | 2012.01.21 |
|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21회 (0) | 201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