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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6회

박주화 2012. 1. 21. 14:55

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9년 6월호) - 한국산악의 고전을 찾아서

설악행각(雪嶽行脚)

노산 이은상

봉정(鳳頂) 월하(月下)의 소요(逍遙)

 

봉정암(鳳頂菴)은 이 산에서 가장 연구(年久)한 역사를 가진 암자입니다.

   가신(可信) 여부(與否)를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암기(庵記)와 전설(傳說)을 거(據)하면, 신라 선덕왕(善德王)대(代)의 성승(聖僧)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입당(入唐)하여 세존(世尊) 사리(舍利)를 얻어와서, 여기 (암(菴)의 서측(西側) 석대상(石臺上))에 칠층탑(七層塔)을 세워, 사리를 봉안(奉安)하는 동시(同時), 이 암자를 지었다 합니다.

   그 후로 신라 문무왕(文武王)시(時)의 원효(元曉)며, 고려 명종(明宗)시의 보조(普照)며, 이씨(李氏)조(朝)에 와서는 환적(幻寂), 승운(勝雲), 두 선사(禪師)를 비롯하여 설정(雪淨), 환공(幻空), 수산(睡山)등(等) 제승(諸僧)이 상계(相繼) 수집(修葺)하여 오늘에 이른것입니다.

   우리가 이 봉정암에 들어서자, 괴위(魁偉)한 일(一) 노승(老僧)이 나와 맞아주니, 이는 금년(今年) 80여세의 고령(高齡)인 춘계(春溪)주지(住持)입니다.

   주지장로(長老)를 따라 선실(禪室)로 들어서니, 벽상(壁上)에는 ‘마하선실(摩訶禪室)’ ‘조유육죽세식일화(祖牖六竹世識一花)’ 등(等) 구(句)의 추사필(秋史筆)이 걸려있거니와, 듣건대, 이 장로(長老)가 일찌기 추사의 문(門)에서 서법(書法)을 배운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노장(老丈) 역시 추사의 필법(筆法)으로 경전(經典)의 명구(名句)를 써 붙여 놓은 것이 많은데, 문외한(門外漢)의 눈으로도 진기(塵氣) 벗은 서풍(書風)이 그 강직(剛直)한 성격과 상응(相應)하는바이 있음을 알겠습니다.

   석공양(夕供養)이 끝난 후, 춘계(春溪)노장(老丈)과 나는 사정(寺庭)에 나섰다가, 곤(困)하여 나 혼자 암(菴)의 근경(近境)을 소요(逍遙)합니다. 문득 깨달으니, 광명(光明)한 달ㅅ빛! 오! 참 오늘밤이 추석(秋夕)입니다. 산 밖에 중추가절(仲秋佳節)은 지금 어떠하온지, 여기 이 공산(空山)에는 소소(蕭蕭) 낙목(落木)과 물 소리뿐입니다.

   깊고 긴 동곡(洞谷)을 내려다보니, 어두운 송림(松林) 위에 달ㅅ빛이 어려, 연방 신필(神筆)을 들고 음영(陰影)을 손질하며 그려나가는 남화(南畵)의 일폭(一幅)과 다름 없는데, 끊이잖고 흐르는 물 소리는 마음에 끝없는 골짜기를 파고 나가며, 들을수록 신비(神秘)한 계시(啓示)를 일러주는듯하여, 차운 밤ㅅ바람 싫은줄도 모르고서 석대(石臺)에 앉은양, 눈을 떴다 감았다, 무한(無限)한 경계(境界)를 어루만져보는 이 순간(瞬間), 나는 무슨 말로 지금의 내 뜻을 전(傳)할 수가 있으오리까.

   쉬임 없이 들려오는 물 소리! 지금 내 귀에 들리는 이 물 소리! 분명히 다른 곳에서 듣던 그 물소리와는 별로 달리 들리는 것이 또한 무슨 까닭이온지! 물 소리 그것이야 다를 것이 없으련마는……

   생각나는 설암선사(雪岩禪師)의 시구(詩句) ―

 

   계성자시광장설(溪聲自是廣長舌)

   팔만진경구누설(八萬眞經俱漏洩)

   가소서천노석가(可笑西天老釋迦)

   도로사십구년설(徒勞四十九年說)1)

 

   무론(毋論) 이 시(詩)를 듣는이가 ‘계성자시광장설(溪聲自是廣長舌), 산색무비청정신(山色無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2)고 한 동파(東坡)의 시를 모의(模擬)한것이라고 말할것입니다.

   그러나 설암(雪岩), 동파(東坡)의 양시(兩詩) 사이에는 적지 않은 경정(逕庭)이 있다고도 하려니와, 나로서는 그 시상(詩想)의 큰것으로나, 그 철학(哲學)의 깊은것으로나, 양시가 같은 말인법호되, 설암의 것을 사랑하고 존경(尊敬)합니다. 천강남청(茜絳藍靑)이라고 할는지요.

   과연 지금 들려오는 이 심산유곡의 물 소리 ― 귀로 듣지않고 마음으로 들을수 있는 이 지극히 맑은 물 소리는 내게도 ― 이 노둔(魯鈍)한 내 귀, 내 마음에도, 팔만(八萬) 성경(聖經)의 오묘(奧妙)한 진리(眞理)를 설(說)하는 것 같습니다.

   이로써 생각하매, 석가(釋迦)의 설법(說法), 기독(基督)의 교리(敎理)가 어느것이나 다 이 자연의 진리(말하자면 이 흐르는 물 소리)를 주석(註釋)한것, 번역(飜譯)한것, 연의(演義)한것, 설명(說明)한 것에 지나지 않을것이며, 모든 철학과 문학과 예술이 온통 이것 하나의 부연(敷衍) 재록(再錄)뿐임을 알겠습니다.

   아니, 다시 더 생각해보면, 이 물소리와 같은 자연만으로도 족우족(足又足)한것이매, 인간의 중언부언(重言復言)인 철학이며 종교며 예술이며 무엇무엇이 필경 소용없는 사족(蛇足)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공산(空山) 월하(月下)에 암석과 송림 사이를 소요(逍遙)하며 물 소리, 바람 소리의 무한한 수시(垂示)에 느끼고 또 느끼는 오늘 이 밤은, 분명 내 일생에 거룩하고 의의 있고 아름다운 한 페지를 만들어 줄것입니다.

 

   깊은 밤 이 산골에 들리는 저 물 소리

   구구(句句) 절절(節節)이 오묘(奧妙)한 진리(眞理)로다

   인간(人間)에 긔똥 설법(說法)은 모두 헛것 이었다.

   물 소리 마음속을 긴 골 이뤄 흐르나니

   밝으신 달이마저 마음 위에 비쳤나니

   이대로 지녀 돌아가 고이고이 잠들리라.

 

   시간은 흐르는 저 밤 시내와 함께 흐릅니다. 깊은 밤 낙목(落木) 공산(空山)에 조화되는 풍경은 아니나마, 시계를 끄내어 보매, 어느덧 거의 다된 자정(子正)입니다.

   선실(禪室)로 돌아 들어가 먹던 밥바리에 저고리를 깔아 베고 누웠으니, 나도 한 사람 산중(山中) 한인(閑人)인듯하여 잠드는 내 눈가에 평화의 고요한 웃음이 떠있음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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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냇물소리 이게 바로 연설이거니/ 팔만 대장경을 다 일러 주네/ 우습다 서천땅 늙은 석가님/ 사십 구년 동안이나 헛 설법 했소’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26

2) ‘냇물소리 자체가 부처님의 광장설법인데/ 산 빛이 어찌 깨끗하고 맑은 몸이 아니리오/ 이 밤에 들려오는 팔만사청 게송들은/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드러 내리오’ 소동파의 ‘계성산색(溪聲山色)’의 싯구로 2연의 ‘기비(豈非 ; 어찌 아니리오)’가 ‘무비(無非 : 아니다 하지 마오)’로 쓰였다.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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