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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17회

박주화 2012. 1. 21. 14:55

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9년 7월호) - 한국산악의 고전을 찾아서

설악행각(雪嶽行脚) (17회)

노산 이은상

청봉(靑峰) 고원(高原)의 적막(寂寞)

 

   사현절벽승의석(寺懸絶壁僧倚石)!

   춘계노장은 우리와 작별(作別)하고 다시 선실(禪室)로 들어갑니다.

   로출고봉객보운(路出高峯客步雲)!1)

   우리는 최고봉(最高峰) 등척(登陟)이라는 무한(無限)한 감개(感慨) 속에서 운연(雲烟)을 헤치고 암(菴)의 우측(右側) 송림(松林) 사이로 들어서는 10월 6일2)의 아침.

   수펑3)과 덩굴을 뚫고서, 실상인즉 아무러한 경상(景象)도 찾아볼 것 없는 이 길을 ― 길로도 가장 험난(險難)하고 준고(峻高)한 이 길을, 이다지 큰일 삼아 오르는 까닭이 대체 무엇이리까. 이것은 다만 설산(雪山)의 최고(最高) 통어자(統御者)인 청봉(靑峰)을 올라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간(林間) 석로(石路)가 잠깐 무미(無味)한법하나, 지극(至極)히 기대(企待)를 한 가슴 안고 걸음조차 별로 바빠짐이 당연(當然) 필연(必然)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암(菴)을 떠난지 약 30분 후 ―

   어허! 이 무슨 특이(特異)한 장식(裝飾)입니까. 기암(奇岩)도 없고, 삭벽(削壁)도 없고, 잔류(潺流)도 없고, 폭포(瀑布)도 없이, 모든 임경(林景)과 천미(泉美)는 그림자도 없이 민절(泯絶)된 대신, 인공(人工)으로 일부러 펴놓으려해도 이렇게 골고루 굴려놓을수는 없을만큼, 수억만(數億萬)덩이의 대소(大小)조차 같은 돌들이 온 산야(山野)의 광활(廣闊)한 사애(斜崖)에 널려있습니다.

   그 규모(規模)와 형태(形態)는 상이(相異)한바이 있지요마는, 그 종류(種類)로 말하자면, 금강(金剛) 비로봉(毘盧峰) 오르는 길에 깔려 널린 ‘금서드리’ ‘은서드리’와 같은자입니다.

   그러한만큼 금강(金剛)의 ‘서드리’나 설악(雪岳)의 ‘서드리’가 다 한가지로, 제향(帝鄕)4)을 향하여가는 자가 반드시 밟지 않으면 안될 거룩한 그 무엇인가 하고도 생각되는 한편, 금강의 그것은 화옹(化翁)5)의 금강 조각(彫刻)하던, 설악의 이것은 또한 그의 설악 조각하신 근본(根本) 대공장(大工場)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금강의 그것은 대소가 너무나 불일(不一)하면서도 대개는 잔 조악이 많음을 보아 금강산을 켜내인 ‘통밥’이라 하겠단 말을 들은적이 있거니와, 여기 이것은 둥싯둥싯한 것들만임을 보아 설악산을 밀어내고 깎아내인 ‘대패ㅅ밥’ ‘까뀟밥’6)이라 하겠습니다.

   팔천만년 풍우(風雨)에 깨어지고 떨어지고 씻기고 부스러져서 밀려 굴려 이리 저리 널려 놓인 이 암석로(岩石路)를 지나서니, 어! 이건 또 무슨 별세계(別世界)입니까.

   무연히 너른 산봉(山峰)이 바위 하나 없이, 나무 하나 없이, 흙도 하나 없이, 다만 청전(靑氈)으로 빈틈없이 투갑을 입혔습니다.

청전(靑氈)7)이라니요?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젓나무’입니다.

   젓나무를 나무로 안 보고 청전이라 하다니요.

   다 까닭이 있습니다. 사방에 막힌 곳 없이 불어닥치는 지혹(至酷)한 풍세(風勢)에 키가 자라려야 자랄수가 없어 제라사 키큰 자랑을 한다는 놈이 겨우 2, 3척(尺)에 불과(不過)하고, 그 대신 몸통만 굵어져서 오히려 서너아람씩 되는자가 많으매, 땅으로만 퍼진것이라, 멀리서 볼 때 절기(節期)가 아니므로, 잔디로도 볼수가 없고, 신이한 청전으로 밖에 볼수가 있습니까.

   ‘키는 내가 작으니라’하는 소리가 나무마다에서 들리는 것 같은 속으로, 혹은 길이 있기도하고, 혹은 젓나무 위로 춤을 추며 가기도 합니다.

   적막(寂寞)! 위대(偉大)한 적막! 상청봉(上靑峰)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다만 적막한 야원(野原)입니다. 이름모를 고산(高山) 초화(草花)가 찬 바람에 한두송이 제대로 피어 이 고원(高原)의 무한(無限)한 적막을 한층 더 심각(深刻)하게 하여줍니다.

   이 적막은 어느덧 내 몸뚱이의 세포(細胞) 알알이 배어들고 말았습니다. 아니, 내 마음속까지 완전히 동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가기를 잊어버리고 주저앉아 가쁜 숨을 거두고 나매, 이 고원의 적막과 내가 둘이 아니요 하나임을 알겠습니다.

  「‘산행망좌좌망행(山行忘坐坐忘行)’

이란 말이 있지요마는, 과연 한번 앉고 보매, 상봉(上峰) 오를것도 잊어버립니다.

   ‘후아기인선아거(後我幾人先我去)’

란 말도 등산(登山)에서는 흔히 쓰는 문구지요마는, 과연 모든」8) 일행은 다 앞서 높이 벌써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우성(吁吁聲)을 멀리 보내며 나를 찾습니다.

   나도 이제야 소리를 받아보내며 일어나 한걸음 두걸음 다시 발을 땝니다.

   인간에서는 남보다 앞서는 것이 승리(勝利)요 쾌사(快事)연마는, 여기에 와서는 전후(前後)를 경쟁(競爭)할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더구나 나는 불교에서 이르는바 ‘소라(疎懶)’9)의 심경(心境)을 즐겨하는자라 지팽이를 천천히 던져 짚으며, 나오는대로 노래를 부릅니다.

 

   높은 산 이 적막(寂寞)이 내 맘에이리 좋아

   가고 오고를 다 잊고 앉았는데

   남들은 내 뜻 모르고 소리질러 부르더라.

 

   앞서고 뒤서고를 다투지 말았으라

   쫓는이 없는 길을 바삐 간다 자랑 마라

   누구나 이를데 이르면 더는 가지 못하나니.10)

 

운주봉(雲住峰)의 구름

 

   적막(寂寞), 오직 적막일것뿐인 이 청봉(靑峰)의 고원(高原)을 올라가는, 지금의 내 심경은 다만 꿈속을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무한한 시원을 느끼면서도, 꿈 같아서 깨고싶도록 답답한 여기. 영원한 평화를 맛보면서도, 또 그대로 무거운 슬픔과 아픔이 가슴을 눌러주는 여기. 여기는. 청봉의 고원입니다.

   문득 보매, 좌하(左下)에 기치창검(旗幟槍劍)을 휘둘러놓은 천불동(千佛洞)의 천불암상(千佛岩相)은 그 별세계적(別世界的) 경관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보다는 천불동의 우편에 솟은 운주봉에 구름 피어나는 모양이 여기 이곳에서는 더 좋은 화경(畵境)이겠습니다.

   구름 한조각이 떠가는 것을 우러러볼적에도 때로는 감개(感慨)에 빠지거늘, 이제 구름이 피어 도는 신비한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오리까.

   자연중에서 나는 가장 사랑하는 것이 구름입니다. 포구(浦口)에 깔린 안개도 좋고, 나무에 걸린 새벽 달도 좋고, 창에 듣는 빗소리도 좋고, 어깨에 쌓이는 함박눈도 좋고, 이름 모를 들국화도 좋고, 구슬 같이 맺히는 이슬도 좋고, 머리카락을 불리는 봄바람도 좋고, 우수수 날리는 나뭇잎도 좋고, 지는 해, 반짝이는 별, 성난 파도(波濤), 잔잔한 못물, 낮에 우는 버꾸기, 밤에 우는 기러기, 공산에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 마을에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길가에 흔들리는 백양목(白楊木) 큰 그림자, 돌 틈으로 새어 흐르는 밤 시냇소리, 어느덧 어느것에 내 마음의 사랑이 아니 가리까마는, 그 중에서도 하나만, 오직 하나만 가지라 하면, 나는 구름을 가집니다. 구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구태여 그 까닭을 말하지는 않거니와, 다시 가만히 생각하매, 내가 사랑한다는 모든 자연은 필경 그만큼 다 내 마음을 괴롭히는 자인줄을 알겠습니다. 그로 보면, 구름은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괴롭히는자라 할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네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너는 사랑하느뇨? 그것은 나도 모릅니다. 물어도 대답할 말이 내게는 없습니다.

오! 저 운주봉을 반만 가리운 구름! 내가 보아온 모든 구름 중에서도 인상 깊은 미묘한 구름의 하나인 저 풍경! 예서도 역시 저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지금 무한한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구름은 좋을러라 구름은 슬플러라

   내 사랑 쏟는 그곳에 아픔 또한 있을러라.

 

   이리하여 우리는 하청봉(下靑峰)에 올랐습니다.

   이 청봉은 상하(上下) 양봉(兩峰)으로 되었는데, 실상 그 고도(高度)로는 얼마의 차이 밖에 안됩니다. 상하 양봉이 다 ‘금자탑(金字塔)’의 형상과 같아, 마치 애급(埃及)11)에나 온듯합니다.

  이 하청봉도 청봉이라 하여 여기까지 오르고서도, 상청봉은 못 올라보고, 그냥 돌아가는 이가 있다 함은 심히 섭섭한 말입니다.

대개 산악(山岳) 답파(踏破)의 욕심으로도 그럴수가 없을것이요, 또 산악 관성(觀省)의 정성(精誠)으로도 상청봉을 올라야만 할것이이니와, 그보다는 진실한 청봉(靑峰)적 가치(價値)를 상청봉에 오르지 않고는 운위(云謂)할 자격이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어이 저 상청봉을 향하여 오릅니다. 반드시 그 무슨 커다란 ‘향수(享受)’ ‘감오(感悟)’가 있을 것을 믿으며……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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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노산산행기’ (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28~129에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춘계 주지 노승은 문득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듬쯕 찍어 내게 낙서 한 줄을 청하기로 나는 즉시// 절은 절벽에 매달렸고/중은 바위에 지혔는데/ 길은 높은 봉으로 뚫려/ 나그네는 구름을 밟고 간다./(寺懸絶壁僧倚石 路出高峯客步雲)//하고 거적거려 주고는 서로 이별하고,...”

2) 설악행각 제7일

3) 수펑 = 숲

4) 하느님이 있는 곳

5) 조화옹(造化翁) = 조물주(造物主)

6) 까뀌 = 한 손으로 찍어 나무를 깎는 연장.

7) 청색 털의 양탄자

8) ‘노산산행기’(상동) p.131에는 이 부분(「 」부분)을 생략하였다. 한시(漢詩)는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산행’(山行) “가노라면 쉬기를 잊고 쉬다 보면 가기를 잊고/ 말을 멈추고 소나무 그늘 아래서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내 뒤에 오는 몇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갔는가/ 제각기 멈출 곳이 있는데 다시 무엇을 다투리요.”(山行忘坐坐忘行 歇馬松陰聽水聲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爭)의 1,3연 부분이다.

9) 느리고 나른함

10) ‘노산산행기’(상동) p.132에는 “앞서고 뒤서고를/ 다투지 마시오들/ 구름이 앞섭디까/ 안개가 앞섭디까/ 오늘은 구름처럼 쉬었다/ 안개처럼 갑시다려.”로 쓰고 있다.

11) 애급 : 이집트(Egypt)의 한자어. 정식명칭은 이집트 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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