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8년 11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10회)
설악행각(雪嶽行脚) (10)
노산 이은상
삼각봉(三角峰)과 옥녀폭(玉女瀑)
고성(古城) 잔첩(殘堞)에 지혀 서서, 기쁜 마음을 일으킬이야 본시 아무도 없으련마는,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가을이 마저 깊어, 날리는 낙엽(落葉)이 눈앞에 어지러우매, 여인(旅人)은 초창(怊悵)한 마음을 더욱 금(禁)할 길이 없습니다.
그대 왜 돌 몇 덩이 앞에서 우는 마음을 품느냐구요?
이 성(城) 쌓은이들 다 어디로 가 계시고
풍우(風雨) 천년(千年)에 성(城)마저 헐린 터를
무상(無常)한 길손이 지나니 눈물 아니 흐르리까.
몇 덩이 남은 돌이 더욱 남을 울림이라
낙엽(落葉)이 불려 날려 쌓여 덮어 가립니다
상(傷)하여 눈물지는 맘 낸들 어이 하오리까.
나는 지팡이를 들고서 성두(城頭)에 올랐습니다. 북천(北天)으로 운표(雲表)에 솟은 삼각봉(三角峰)은 진실로 장관(壯觀)이니, 아마 설악 중 영서(嶺西) 한계(寒溪)에 있어서는 고성(古城)에서 삼각봉 바라보는 것이 봉만(峰巒) 경관(景觀)으로 수추(首推)1)할 곳이라 하겠습니다.
삼각봉은 길도 무론(毋論) 없거니와, 또 곁에서 먼 하늘과 함께 앙망(仰望)할 경(景)이매, 등척(登陟)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라보매, 홍엽(紅葉)으로 불붙는 삼각봉이 일점(一點)운(雲) 없는 가을 하늘에 높이 솟은것은, 아무리 보아도 천공(天公)이 그 비장(秘藏)한 중보(重寶)을 인간에 허여(許與)한 것입니다. 나는 삼각봉의 경관을 마음에 새긴채로 몸을 돌립니다.
청(靑) 비단 고운 보에 싸두었던 붉은 옥(玉)을
남도 다 보라시고 퍼놓으니 저 삼각(三角)을
내 품에 받아 넣고서 웃고 돌아 내리니라.
여기서 성지(城址) 상구(上丘)에 있는 소위(所謂) ‘대궐(大闕)터’로 올랐습니다. 이 ‘대궐터’라는 것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이 유(留)하시던 곳이요, 또 조금 뒤에 있는 망경대(望京臺)란 것도 그가 잃어버린 고도(古都)를 바라보던 곳이라 전(傳)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금강산(金剛山) 영원동(靈源洞) 초입(初入)에 있는, 경순왕자(敬順王子)의 전설지(傳說地)에 쓰인 이름을 여기서도 한번 숭내2)내려한, 어떤 말 좋아하는 이의 부질없는 짓이요, 더욱이 경순왕자도 아니요 바로 경순왕 그이라 하는것은 더 딱한 전설입니다. 다만 여기에 한 고성이 있자, 이것을 등대고서 나타난 민중(民衆)의 신라 향(向)한 조국정(弔國情)의 일단(一端)일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내려 성하(城下) 계곡(谿谷)을 타고 물을 따라 내려갑니다. 아까 저쪽 언덕 길로 들어오던 것도 ‘성(城)ㅅ골’이라 부르는 것이었지만, 실상 ‘성ㅅ골’이란 것은 이 계곡(谿谷)을 이름입니다.
둥글, 넓적, 뾰족, 꺌밋 혹은 꺼추루, 혹은 빤즈르한3) 암석(岩石) 품평(品評)을 하는 이 골짜기를 타고서, 재주불림은 없는채로 빠지는 구석 없이 잘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보면서 리수(里數)를 따질것은 없으되,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내려오매, 정(丁)자(字)로 가로 흐르는 대천(大川)을 만나니, 이것은 아까 성로(城路)로 들어서기 전에 끼고 올라오던 한계(寒溪) 그것의 본류(本流)입니다.
우리는 이 대천 본류로 나와, 다시 잠깐 서(西)으로 물을 따라 내려갑니다. 모르는 이는 그냥 대천을 끼고 올라가는 것으로 상로(常路)를 삼는다 하나, 실상은 불과(不過) 오십분간(五十分間)만 내려오면 옥녀폭(玉女瀑)의 기승(奇勝)4)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계반(溪畔) 우오(右奧)에 다른 곡류(谷流)로 이루어진 옥녀폭은 층층(層層) 거암(巨岩)을 뚫고, 삼절(三折) 삼와(三窪)로 되었습니다.
소유(少遊) 권상용(勸相容)의 기(記)에는, 이것을 ‘옥류(玉流)’라 쓰고, ‘폭절자삼(瀑折者三), 석와자삼(石漥者三), 절즉수분이백(折則水噴以白), 와즉륜이의벽(漥則輪以疑碧), 도계즉벽여백(到溪則碧與白), 분운부정(紛紜不定)’5)이라 하였는데, 무론(毋論) 그 묘사(描寫)는 간명득요(簡明得要)라 하겠거니와, 그 명자(名字)에 있어서는 내가 듣는바 ‘옥녀(玉女)’와 그가 쓴바 ‘옥류(玉流)’가 서로 다릅니다.
아마 옥녀(玉女) 옥류(玉流)가 음상사(音相似)한데서 생긴 상이(相異)이겠거니와, 고인(古人)의 기(記)를 따라 옥류라 하지않고, 시인(時人)이 전(傳)하는 옥녀를 취하는 것을 폭상(瀑上)에 있는 묘(妙)한 바위를 ‘공기바위’라 하여, 옥녀가 가지고 놀던 것이란 말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상(上) 이절(二折)의 폭은 소폭(小瀑)이로되, 하(下) 일절(一折)은 상당(相當)한 장폭(長瀑)이며, 여기 석와(石漥)란 것은 저 탕수동(盪水洞) 명물(名物)인 석탕(石盪) 그것과 같은자가 있어서, 주민(住民)은 흔이 옥녀탕(玉女盪)이라고도 한답니다.
폭반(瀑畔) 암상(岩上)에 위태로이 앉아서도, 승경(勝景)에 취(醉)한 마음이라, 겁(怯)을 잊어버린것을 한참만에야 무모(無謀)인줄 깨닫고,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도 백옥선녀(白玉仙女)의 ‘공기’받든 모양을 그려보매, ‘체모’없이 또 취(醉)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옥녀(玉女)가 이름뿐이요. 자취뿐이요, 그 자태(姿態)는 영원(永遠)히 다시 보이지 않을것이매, 오히려 섭섭합니다.
어여뿐 백옥선녀(白玉仙女) 공기 받든 그 모양이
하마 보일가 해 기다리고 앉았건만
흐르고 솟고 떨어지고 물 소리만 들리더라.
옥녀(玉女)가 별거이랴 이 물이 곧 옥녀(玉女)로다
물ㅅ가에 저 공기도 지금 한창 받는 것을
사람은 옥녀(玉女)를 헛 알아 없다 말만 하더라.
삼선봉(三仙峰)과 학서암(鶴棲巖)
옥녀폭을 떠나, 대천 본류를 끼고 ‘감사(監司)놀이터’라는 개울 바닥의 반석(盤石) 길을 지나, 얼마쯤 지난 때에 서남(西南)으로 돌아들은 산곡(山谷)을 보는데, 촌명(村名)은 ‘느아우’라 부르고, 한자(漢字)로는 ‘누아우(壘阿隅)’라 씁니다.
개울을 우편(右便)으로 끼고 오르며, 건너편 ‘느아우’쪽으로 보는 준장(峻壯)한 삼개(三個) 첨봉(尖峰)은 이름마저 그럴사한 삼장군봉(三將軍峯)입니다.
전사(戰事)가 방급(方急)하여 수뇌(首腦)의 참모(參謀)가 여기에 열렸다고 보는 것은 명자(名字)로 인하여 짐짓 말함이라 할찌라도, 저 삼(三)첨봉(尖峰)의 상대(相對) 상고(相顧)한 모양이 그냥 무의서(無意緖)한 토석(土石)으로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不動)한 자세(姿勢) 그대로에 오히려 시미타(矢靡他)6) 정신(精神)을 보게 하고, 침묵(沈黙)의 비밀(秘密) 그것에서 도리어 천만언(千萬言) 변설(辨說)을 들게 하여, 지금 대립(對立)한 이대로 남아(男兒) 장부(丈夫)의 가슴을 흔들어놓음을 깨닫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협로(狹路)로 들어서서, 혹은 초수(草藪)7)간(間)에 야국(野菊)의 난개(亂開)를 보며, 혹은 수림(樹林)상(上)에 산조(山鳥)의 제비(齊飛)를 듣는 동안, 그대도 길이 하마 지난(支難)해질뻔한 때에, 또한 청냉(淸冷)한 물 소리 문득 들리매, 몸조차 그리로 쓸릴듯이 끌려갑니다.
그러자 다시 보매, 대안(對岸)에는, 조금전에 보던 삼장군봉(三將軍峰)과 같은 그러한 삼첨봉(三尖峰)이 또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것은, 호장(豪壯) 대신 기려(奇麗)하고, 웅용(雄勇) 대신 온유(溫柔)하여, 일(一)은 랑윤(朗潤)이라 함직하고, 이(二)는 청화(淸華)라 함직하고, 삼(三)은 원묘(圓妙)라 함직한8), 대번에 시원한 맛이 돌고, 평화(平和)한 빛이 괴어, 마치 활개8-1)만 들면 나도 몰래 하늘로 날것 같은 기미(氣味)를 주는 자들이니, 과연 이름을 듣고보매, 삼선봉(三仙峰)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삼선봉은 기운차게 솟음이 아니라 흥거로이 솟음이며, 성내고 솟음이 아니요 웃고 솟음이라 하겠습니다.
좋구나 삼선봉이 웃고 한번 솟았구나
물 소리 흘려놓고 흥거로이 솟았구나
활개 곧 들기만 하면 나도 둥실 뜨겠구나.
여기서 좌편(左便) 잡목(雜木) 넘어로 멀리 보이는 장엄(莊嚴)한 암벽(岩壁)을 적암(赤岩)이라 하는데, 우리가 지나온 고성(古城) 구상(丘上) 대궐터로부터 흐르는 물이 저리로서 떨어집니다.
얼마만에 송정(松亭) 언덕을 넘어, 산전(山田) 한반을 자르고 지나면서, 동북(東北)면(面)으로 석장(石嶂) 연벽(連壁)을 보는 맛은 참으로 흉우(胸宇)를 상활(爽濶)하게9) 합니다. 그중에서도 열장(列嶂) 가운데로 따로 높이 빼어난자가 있으니, 그것은 응암(鷹岩)이요, 응암은 형사적(形似的) 명칭(名稱)일뿐만 아니라, 그보다는 거의 이 근경(近境)을 압도(壓倒)하는 위력(威力)을 가진 점에서 더 무섭게 보입니다. (하략)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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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략부분)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80~p.82
다시 좁다소라한 숲길로 들어섰다가 잠깐 만에 널펀한 돌길을 넘어 가면서 끊였던 물소리를 또 듣게 됩니다.
오른 편 맞은 언덕에 높이와 넓이가 모두 몇 백길이나 됨직한 큰 바위 벼래를 만나는데 윗단 한 모퉁이에 깨어진 자취가 있습니다.
돌빛으로 보아서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 한데 이것은 여기에 학이 대대로 깃들이고 있었던 것을 독사란 놈이 해치려다가 마침 벼락이 떨어져서 천벌을 받은 자취하고 합니다.
학들은 그 천둥바람에 새끼들을 독사한테 물리지는 않았지마는 그길로 이곳을 떠나가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하며 지금은 이름만 남아 ‘학서암(鶴棲巖)’이라고 전할 따름입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네들 정상과 다름 없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옛집을 버린 것이 어찌 저 학만이겠습니까.
정들인 제 집이라
날아 들고 날아가고
대대로 어이 새끼
예서 살던 학두루미
이 좋은 강산을 버리고
어디로들 가던고.
새끼들 거느리고
정처 없이 떠 돌면서
오늘은 어느 곳에
눈물의 깃을 쳤노
언제나 고향 산천으로
웃고 돌아 올런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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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수추(首推) : 으뜸으로 추천하다.
2) 숭내 = 흉내
3) 꺼추루, 혹은 빤즈르한 = 거칠고, 혹은 빤지르르한
4) 기승(奇勝) = 기이한 경치
5) 폭포 꺾인 것이 세 번. 돌확으로 된것이 셋, 꺾여서는 물을 뿜어 내는 흰 빛이 나고, 괴어서는 빙빙돌며 푸른 빛이 엉겼는데 시내에 이르고 보니 희고 푸른 것이 서로 분주하며 가만히 있지 아니한다.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76
6) 시미타(矢靡他) : 시경(詩經)의 용풍(?風) 백주(柏舟 : 측백나무배)편에 나오는 말로 “다른 마음 갖지 않겠다” 맹세의 말. ‘노산산행기’(상동) p.78에는 “굽힘 없는 절개의 꿋꿋한”으로 풀이해 놓았다.
7) 갈풀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8) 랑윤(朗潤),청화(淸華),원묘(圓妙) = 밝은 채 부드럽고, 맑은 채 빛이 나고, 둥근채 묘하다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8-1) 활개 = 어깨부터 팔까지 또는 궁둥이부터 다리까지의 양쪽부분. 새의 활짝편 두 날개. / (관용구) 활개를 펴다 = 팔다리를 쭉 펴다. 날개를 쭉 펴서 벌리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아니하고 떳떳하게 기를 펴다.
9) 흉우(胸宇)를 상활(爽?)하게 = 가슴을 시원하게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10) ‘노산문선’의 하략 부분을 ‘노산산행기’(상동)에서 발췌하여 아래에 수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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