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8.10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9회분)
설악행각(雪嶽行脚) (9)
노산 이은상
상암(裳岩) 지나 연현(淵峴)에
이야말로 뇌굉만학(雷轟萬壑)1)이요, 이야말로 사인현전(使人眩轉)2)인 용탕(龍盪), 또는 그리로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여러 탕폭(盪瀑)은 아무리 헤아려도 위혁적(威嚇的)인 자연(自然)입니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생각에 도로 정(情)이 들지 못하는게 이 탕수(盪水) 자연의 결점(缺點)인지도 모릅니다.
탕 속에 괸 깊이 모를 시퍼런 물을 들여다보매, 용(龍)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용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도 두꺼운 바위ㅅ돌이언만, 마치 유리 조각이나 디디고선 것 같아서, 발ㅅ바닥이 못내 편안치를 않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모르게 앉은 걸음으로 자꾸 물러나, 꽁무니를 뒤로만 뒤로만으로 빼게 된 것이, 언제 벌써 용폭(龍瀑) 위로 기어 올라가, 위험(危險)을 떠난 평평한 개울 바닥 길로 가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겠습니다.
실로 탕수의 위암(危岩) 거폭(巨瀑)들은, 미묘(美妙)도 아니요, 다정(多情)도 아니요, 자애(慈愛)도 아니요, 다만 위혁(威嚇)입니다. 그러므로 달 아래 걸어오는 담장(淡粧) 가인(佳人)3)도 아니며, 기쁨과 슬픔을 숨김없이 의논(議論)할 벗도 아니요, 언 손발을 녹이라고 무릎 밑에 넣어주실 어머니도 아닙니다. 다만 무서운 매를 드신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자리 앞을 물러나, 다시 보고 생각하매, 거기엔 미묘 이상(以上)의 다정 이상의, 자애 이상의 위풍(威風) 당당(堂堂)한 남성미(男性美) 내지 남성애(男性愛)라 할, 그 무엇이 가슴 속에 큰 인상(印象)을 박아줌을 느껴 알겠습니다.
여기서 얼마아니하여 또 한 개의 장폭(長瀑)을 만나니, 이것은 두문폭(杜門瀑)입니다. 용탕 위에서부터 계곡(谿谷) 막바지에 높다랗게 솟아 막힌 감투봉 하(下)까지의 십리(十里)를 따로이 두문곡(杜門谷)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그 속에 있는 폭포라 하여, 이것을 두문폭이라고 부릅니다.
이 폭포를 지나서부터는 혹은 개울 바닥으로 혹은 잡목(雜木) 사이로 벌써부터 지친 다리를 끌고 갑니다. 지금 우리들의 걸어가는 모양은 결코 다리를 옮겨놓는것이 아닙니다. 버릴수만 있으면 버리고라도 갈 모양으로, 끌고 간다 함이, 오히려 정직(正直)한 말이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용탕을 떠난 약 1시간만에 감투봉 위로 올랐습니다. 여기서 봉(峯)의 우편(右便) 등성이를 타고 거의 2시간을 걸려 ‘사태(沙汰)목’이란데 이르니, 상암(裳岩)4)의 엄전한 모양이 우안(右眼)으로 들어옵니다.
치마 중에도 요사이 치마 같이 ‘메린스’5)나 ‘후지기누’6)따위로 짤막하게 걸친 치마가 아니라, 덕성(德性)을 그대로 감추어 오히려 더 빛나게 깨끗이 다려 입은 무명 긴 치마라 하겠습니다.
소박(素朴) 속으로서 흘러나오는 믿음성 있고 든든하고 푸지고 묵직한, 누군지는 모르나. 모르는 그대로 인후(仁厚)하고 현숙(賢淑)하고 순진(純眞)하고 성결(聖潔)한 그의 자품(資品) 앞에 예경(禮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길게 드리우신 저 임의 무명 치마
거친듯 어지시고 숭한채7) 빛나시네
주시는 푸진 사랑도 이리 든든 하시구나.
든든한 사랑이오매 믿고 아니 잊으리다
켜켜이 쌓인 설음 다 버리고 가옵니다
이 뒤란 생각만 하고도 웃고 돌아 가오리다.
여기서 또 얼마아니하여 산상(山上)에 한 못(淵:연)이 있음을 보는데, 물은 맑게 괴지는 못하였고, 질벅질벅한 습지(濕地)입니다. 범위(範圍)는 제법 광대(廣大)하게 된것인데, 여기에 이 ‘못’이 있다고 해서, 이 고개를 ‘못재’라 부르고, 인(因)하여 한자(漢字)로는 ‘연현(淵峴)’이라 씁니다.
연현에서 한 삼십분을 걸려 고개를 내리매, 연현리(淵峴里)라는 산촌(山村)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밤 이 마을 산가(山家)에서 피곤(疲困)한 몸을 쉬기로 합니다.
산에는 어느덧 황혼(黃昏)이 덮입니다. 나무들은 저녁 바람에 불려 소리를 내며 흔들고 있습니다.
내게서 떠나지 않는 황혼(黃昏)의 비애(悲哀)는 또한 여기까지 날 더불어 같이 왔습니다.
조탁암(鳥啄岩)과 한계고성(寒溪古城)
더할수 없는 평화(平和)와 신선(新鮮)에 쌓인, 이 연현의 산촌은 지금 광명(光明)한 아침 햇빛을 받은 채로 오히려 그 정적(靜寂)함은 꿈속 인것같습니다.
이 마을의 평화, 신선, 정적의 꿈도 깨드려지는 그 번화(繁華)한 시절(時節)이 후일(後日) 어느때에 있을는지 그것은 내가 모르거니와, 지금 이 영원(永遠)히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산촌의 ‘아름다운 꿈의 정경(情景)’은 언제나 내 머리에 ‘그리움의 적(的)8)’이 되어 있을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떠나는 시월(十月) 삼일(三日)은 설악(雪岳) 행각(行脚)의 제사일(第四日)입니다.
연현리에서 동곡(洞谷)을 타고 석로(石路)로, 혹 초로(草路)로 이십리(二十里)를 내려오면 광계동(光溪洞)이 됩니다. 이 광계동이라는 것은 물을것없이 석일(昔日)9) 이곳에 섰던 사명(寺名)으로 인칭(仍稱)됨이겠거니와, 이제 와서는 광계사 구허(舊墟)라고 전(傳)하는 지점(地點)이 있을뿐이요, 그와 가까운 거리(距離)에 얼마 크지 않은 폭포 하나가 있어, 역시 광계(光溪)란 이름을 같이 얻어 남았습니다.
그 아래에 조탁암(鳥啄岩)이란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한가운데가 상당(相當)히 깊이 패어 요자상(凹字狀)을 이루었습니다.
이 까닭은, 겨울이면 수천마리의 새들이 이 바위안으로 날아들어 바위를 쪼아 먹기 때문이라 하나, 실상은 바위 부스러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틈 속에 들어있는 벌레를 먹는것일것입니다.
바위 확10) 속에와 그 주위(周圍)에는 새들이 쪼아낸 돌 부스러기가 마치 수수 껍질 같이 널렸습니다.
들으니, 토인(土人) 중에 어떤 분이 이 돌부스러기들을 주워모아다 떡을 만들어보았으나 못먹겠더라 하더라니, 이런 경우(境遇)로 보면, 사람이란 너무나 영악(獰惡)스런 동물(動物)인것 같습니다.
짐승을 잡아먹고, 새를 잡아먹고, 그나마 부족(不足)하여 새가 파먹던 바위 부스러기마저 행여나 하고 시식(試食)까지 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그냥 넘길 이야기는 아닌듯합니다.
나는 지금 이 조탁암에서 좌우(左右) 수림(樹林) 속에 날아다니는 새들을 평일(平日) 달리 유심(有心)히 바라봅니다.
공중에 나는 저 새 쉬는 곳곳 제 집이요
먹으려 입으려 근심이란 없는 것이
공명(功名)도 본시 모르고 제 뜻대로 사는구나.
가고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아침 이슬 저녁 놀에 고운 노래 부르면서
목숨이 지는 날까지 제 뜻대로 사는구나.
만일 나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 다른 무엇이 되라 하면, 나는 단연(斷然) 저 새가 되어 극(極)히 극히 짧을찌라도 세간(世間) 번우(煩憂) 다 모르고 자유(自由)롭고 평화(平和)스러운 생애(生涯)를 누려보려는 것밖에, 더 다른 허욕(虛慾)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탁암으로부터 얼마아니하여 가로 놓인 큰 하천(河川)을 만나니, 이것이 한계(寒溪)입니다.
이 한계를 끼고 얼마쯤 오르다가, 좌편(左便)으로 일냥(一兩)11) 촌가(村家)를 만나는 몫에서 가던 길을 그대로 버리고서 잠깐 좌안(左岸) 산로(山路)를 기어 오르는 것은, 여기서는 고적지(古蹟地)로 가장 유명한 한계(寒溪) 고성(古城)을 찾고자 함입니다.
길은 그리 험삽(險澁)12)하지 않건마는, 힘은 들대로 들어, 숨이 턱밑까지 받혀오르고도 더 오를데를 찾습니다.
너무나 강파르게 오르는 길이라, 몇 걸음에 한번씩은 무릎방아를 찧고야 오릅니다.
이리하여 겨우겨우 고개를 오르고, 고개 언덕에서 숨을 거두고는, 다시 송림(松林) 속을 헤치게 되는게, 숙인 고개를 한번만 들게 해달래도 좀체로 허락하지 않는 나직답답한 수평길이니, 이것을 따로 ‘성(城)ㅅ골’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길도 오히려 탄탄대로(坦坦大路), 얼마아니하여 길의 형적(形迹)은 완전(完全)히 없어지고, 수목(樹木) 사이엔 암석(岩石), 암석 사이엔 수목이어서, 어디로 가야 할는지를, 몇 번 다녔다는 인도인(引導人)까지도 두리번거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곱추춤을 춥니다.
그러다 마침내 한쪽을 뚫고 길넘는 초수(草藪)13)를 헤치면서, 송간(松間)에 걸린 거미줄을 ‘베일’인양 얼굴에 덮어써가며, 바닥을 보든 못하고 발로써만 소경디딤을 하며, 오르고 내리고를 얼마쯤 한 다음에, 우리는 틀림없이 성첩(城堞)에 대었습니다.
이 한계 고성에 관하여 여지승람(輿地勝覽)과 문헌비고(文獻備考)와 및 창산(昌山)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14) 등(等)에도 다 기록(記錄)되기는 하였으나, 그 자세(仔細)한 역사(歷史)와 구조(構造)에는 언급(言及)한 것이 없으므로, 지금 와서 잔첩(殘堞)15) 아래 서서는 더욱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토인들의 말은 신라(新羅) 말왕(末王) 김부(金傅)왕(王)16) 시(時)의 소축(所築)이라 전(傳)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잔석(殘石) 중에서, 연전(年前)에 어떤 분이 ‘지정(至正) 18년’이란 연호(年號) 박힌 와편(瓦片)을 얻어, 지금 당군(當郡)에 보관(保管)중이라 하니, 그것으로 보면, 지정(至正)이 원(元) 순제(順帝)의 연호이매, 그 18년은 우리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7년(서기 1358)에 해당(該當)합니다.
그러면 이 성이 신라 종기(終期)에 된것이 아니라, 고려 말엽(末葉)에 된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신라 경순왕(敬順王) 시에 영축(營築)한 것을 사백년(四百年) 후 고려 공민왕 시에 중수(重修)한 일이 있은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간(如何間) 양자(兩者) 중에 그 어느것일것입니다.
그러나 사기(史記)를 거(據)하면, 경순왕은 여기에 축성한 사실이 없고, 다만 민중(民衆)이 망국(亡國)을 애통(哀痛)히 여긴 나머지에 생겨난 전회(傳會) 허전(虛傳)일뿐이요, 고려 공민왕 시대로 말하면 실로 강원(江原), 함경(咸鏡) 등지(等地)에 축방(築防) 준비(準備)와 군사적 활약(活躍)이 잦았던 위에, 더욱이 유물(遺物)의 증거(證據)가 소연(昭然)한만큼, 나는 이 성을 고려 말엽 공민왕 시에 쌓은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성은 상당히 대규모(大規模)로 되었는데, 주위는 답사(踏査)할 길이 없고, 또 여기 이 일구(一區) 밖에는 잔첩의 그림자도 찾을수가 없거니와, 고(高)는 대개(大槪) 20여척(餘尺)이나 되겠고, 성상(城上)의 광(廣)은 삼층(三層)으로 된 첩성(疊城)입니다. 그리고 지금 남아있는 일부분이자, 또한 간문(間門)이 있는 자리인데, 지금은 후부(後部)가 퇴락(頹落)하여 막혔으므로, 문(門)이 아니라 무슨 굴(窟)처럼 되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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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석
1) 뇌성(雷聲)이 수많은 골자기에 울려
2) 사람으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하는
3) 담장가인(淡粧佳人) : 요란하지 않게 엷게 화장한 아름다운 이. 화장(化粧)을 농도에 따라 엷은 화장을 담장(淡粧), 짙은 색조화장은 농장(濃粧)·단장(丹粧)·성장(盛粧)으로 구분함.
4) 치마바위
5) 메린스[(에스파냐어)merinos], 모슬린[(프랑스어)mousseline] : 얇고 보드랍게 짠 모직물,
6) (일어) ふじぎぬ [富士絹] : 날과 씨를 모두 견방사로 하여 평직으로 짠 견직물. 속옷·부인복·아동복 등의 옷감으로 쓰임
7) ‘숭한채’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66에는 ‘불수록’으로 기록하여 놓았다.
8) 적(的) = 대상(對象)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9) 옛날
10) 속이 빈 반구 형태의 가마솥 모양
11) 한 두엇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12) 험하고 껄끄럽게
13) 갈풀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14) <창산(昌山)>은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성해응(成海應)을 말하며, 그가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는 우리나라의 명산·승지(勝地)의 지리를 수록한 책으로 대한제국 융희 3년(1909)에 경성외국어학교 교우회에서 경도(京都), 기내(畿內), 해서(海西), 관서(關西), 관북(關北), 호중(湖中), 호남(湖南)으로 나누어 펴냈다. 1책의 사본(寫本).
15) 남은 돌무더기, 남은 터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16) 경순왕(敬順王, ?~978) : 신라의 마지막 왕(재위기간 927∼935). 능은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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