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21회

박주화 2012. 1. 21. 14:52

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09.11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21회)

 

설악행각(雪嶽行脚) (21)

노산 이은상

 

금강문(金剛門)은 열려있다

 

  지금 우리가 올라선 이 마등령(馬登嶺)은 내외(內外) 설악(雪岳)의 분수령(分水嶺)입니다. 이 운악(雲岳) 일산(一山)을 상중하(上中下)로 나누어 말한이도 있었습니다마는 (예(例)하면 성창산(成昌山) 같은이) 대개는 문헌(文獻)이나 현칭(現稱)이 다 내외(內外)로 나누는 것입니다.

  즉(卽) 어제까지는 내설악(內雪岳)에서만 유상(遊賞)한 것이요, 오늘부터는 외설악(外雪岳)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악경(雪岳景)의 십지칠팔(十之七八)은 이미 내설악(內雪岳)에서 다 본 셈이요, 남은 것은 불과 이삼(二三)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고인(古人)도 내설악만에 그친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외(內外)를 전부 답파(踏破)한 후가 아니면 설악의 반면(半面)만 보고 반면은 못 보는 것인만큼, 진실한 의미에서는 설악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한것입니다. 또한 그 위에 내외설악의 특징(特徵)이 실로 판이(判異)함으로 보아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 내외 설악이란 것이 단순(單純)히 마등령을 사이에 놓고 내서(內西) 외동(外東)으로 구분된 것만이 아니라, 일보(一步)도 더 옮기지 않고 그대로 서서 돌려보고 내다보는 거기에 경상(景象)과 운의(韻意)가 판이(判異)한 별개(別個) 배포(排舖)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어제까지의 ‘아늑’은 오늘부터의 ‘기승스러움’으로 변(變)하여, 여태껏 무희(舞姬)가녀(歌女)의 분(粉) 향기 속에 취(醉)하였던 것이, 대번에 호협(豪俠)장부(丈夫)의 억센 방망이에 훨쩍 깨어난 셈입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내려가는 이 마등령 뒷골짜기로 말하면, 승려(僧侶)간(間)에서는 소위(所謂) 천불동(千佛洞)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마는, 실상 주민들은 ‘설악골’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설악산중(雪岳山中) 진설악(眞雪岳)’이라 할 곳이 여긴줄을 알겠습니다.

  과연, 오분(五分)의 과장(誇張)으로 말하면 거의 수직(垂直)이라고 할만큼 경사(傾斜)진 이십리(二十里) 장곡(長谷)이 기암촉석(奇岩矗石)의 천병만나(千兵萬馬) 뿔뿔이, 그대로 빽빽이, 또 그대로 번뜻이, 다시 그대로 환하게, 제각기 한 자리 한 모퉁이씩을 차지하고서, ‘혼자의 자랑’을 여지(餘地)없이 발휘(發揮)한 그대로 또한 모이어 ‘모두의 자랑’을 조화(調和)있게 성취(成就)하였습니다.

  영상(嶺上)에서 굽어 바라보는 이 설악골 즉 천불동은 금강의 만물초(萬物草)와 일호(一毫)도 그 조직(組織)이며 형태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 하면, 금강의 그것은 가히 답파(踏破)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 이것은 등척(登陟)할 길이 없는 것이겠습니다.

  금강 만물초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려니와, 실로 이 설악동 암형(岩形)의 기괴(奇怪)를 전하려하면, 아무리 유마힐(維摩詰)1이라도 잔 사설장이가 안될수 없을듯하나, 다시 생각하면, 열반(涅槃) 묘심(妙心)을 내랍시고 설명하는 사람으로도 여기와서는 저도 무식군 노릇을 아니할 수 없을겝니다.

  “그러면 그게 무어란 말이냐”고요?

  “그렇지죠. 그래! 그저 참 그렇지요!”

 

  설악산 설악동이 그래 정말 어떻더냐

  예 그게 참 그렇지요 그게 저 그렇더군요

  자세힌 모르겠구요 그저 모두 참 그렇지요.

 

  이 궁기극교(窮奇極巧)한 암상(岩上)은 사람의 잔잘구레한 묘사(描寫)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범자(凡者)들이 아닙니다.

뾰족하다, 뭉툭하다, 끌밋하다, 반지르르하다, 우뚝하다, 납작하다, 둥글다, 움펑하다, 불룩하다, 걸쭉하다, 꼬불하다 …… 등 우리가 가진 이따위의 모든 어휘(語彙)를 다 벌려놓아 무슨 문장을 짓는다 하여도, 결코 이것 자체는 만지일(萬之一)도 쾌(快)하게 생각하지를 않을것입니다.

  어찌보면 사자(獅子) 같고, 다시 보면 맹호(猛虎) 같고, 그리다간 노승(老僧) 같고, 또 더 보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것이 천만개가 다 그러하니, 진실로 여기서 이 변화무상(變化無常)한자, 아니, 이 변화무상한 관경(觀景)을 무슨 말로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2이란 금강경의 대표적 명구를 과연 이곳에서 그 진리의 일단이라도 깨닫고 가는 것만이 가장 또렷한 사실인양 싶을뿐입니다.

  우리는 동곡(洞谷)의 좌편 허리춤을 타고서 마치 하늘에서나 내려오는듯이, 참아 날지 못해 걷기는 걸을찌라도, 활주기(滑走機)쯤은 필요를 느끼지 않을만큼 급속도로 미끌러져내립니다.

  내외산(內外山) 승려(僧侶) 또는 산민(山民)의 중요한 교통로이기 때문에, 번잡(煩雜)한 왕래는 없다 할찌라도, 그대로 길의 형적은 있으므로 미로(迷路)에 들 염려도 없거니와, 비교적 험난도 태무(殆無)한 길입니다.

  령상(嶺上)에서 내린지 한 30분허(許)에, 좌편의 웅대한 암애(巖崖)가 그대로 수보(數步) 간격(間隔)에 다시 잠깐 돌립(突立)하며, 하마 닫힐듯이 언제나 열려있는 천성(天成) 석문(石門)이 있음을 만나니, 이것은 금강문입니다.

 

  닫힐듯 열리었네 밤낮에 열려있네

  찬란한 금강문(金剛門)이 길이 여기 열리었네

  우리 임 여신 문이니, 주저하지 말았스라.

 

  아낄듯 쓰라시네 마음대로 쓰라시네

  풍성한 금강연(金剛宴)안에 남김 없이 쓰라시네

  우리 임 주신것이라 의심할것 하나 없네.

 

  막힌줄 알지 마라 없는양 알지 마라

  언제나 열려있네 무궁무진 쌓여있네

  진리(眞理)는 지금도 바로 네 발 앞에 놓였나니.

 

 

와선(臥仙) 비선(飛仙)의 쌍절경(雙絶景)

 

  이 금강문을 벗어나 낙엽 쌓인 돌길을 헤치면서 오르고 내리는 동안, 나는 분명히 무슨 신비(神秘)의 전람회(展覽會)에나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을 일으킵니다.

  제1실은 장엄(莊嚴), 제2실은 화려(華麗), 제3실은 정결(淨潔), 제4실은 미묘(微妙), 이리하여 오실(五室), 육실(六室)로 백실(百室) 천실(千室), 몇 만실(萬室)일지 모르는 이 신비의 전람회장에 들어와, 그동안만도 웅기(雄奇), 소랑(昭狼), 현묘(玄杳), 원족(圓足), 적막(寂寞), 휘황(輝煌) 등(等) … 이루 셀수 없는 많은 방을 거쳐 왔거니와, 과연 여기는 그래 제기호실(第幾號室)이며 또 무엇을 진열(陳列)한 곳인가요.

  지금 여기가 몇호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방의 이름은 ‘유심(幽深)’인것 같습니다. 설악(雪岳)이 본시 산이요 산중에도 심산(深山)이매, 여기 와서 따로 ‘유심’을 말함이, 얼른 생각하면 얄궂고 웃으운 말일법하나, 설악 중에서도 완전히 또는 전문적으로 ‘유심’한 곳은 이 곳이겠습니다.

  어떤 것이나 ‘맛’이란 말이 붙는 것은 친히 맛보아보지 못한이는 모를것이어니와, 이러한 ‘심산미(深山味)’도 그것이 ‘맛’인 이상, 진실로 맛보는 이만이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산미란 대게 어떠하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 둔(鈍)한 ‘미각’으로나마 말씀한다면, ‘심산미’란 떫고 쓰고 맵고를 혼합(混合)한 그 무엇이어서 대개 초미자(初味者)는 입맛만 다시어보고, 심(甚)하면 상찡기고 돌아섭니다. 그러나 그것은 떫은채로 안 구수한 ‘구수함’이 있고, 쓴채로 아니 단 ‘닮’이 제게로부터 생겨나서, 나중에는 혹애(酷愛)하게 됨이 결코 ‘아편’으로도 비(比)하지 못할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완전히 혹(惑)하게 되고 마는 날에는, ‘세간일만미(世間一萬味) 차피휴우휴(此彼休又休)’3란 그대로가 되고 말지요 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금강문에서 한 30분 동안, 극히 고급적(高級的)이요 극히 항구적(恒久的)인 매혹성(魅惑性)을 가진 이 심산미에 다시금 취(醉)하면서 내려오다가, 잠깐 우편 송림(松林) 사이로 갈려들어가매, 반석(盤石)에 반야대(般若臺)라 각자(刻字)해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 반야(般若)란 것은 지혜란 의미의 범어(梵語) ‘프랏냐’를 음역한 것입니다마는 이 반야대로 말하면, 이 산에서도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닌듯 합니다.

  …과수렴동(過水簾洞), 등사자항(登獅子項), 역반야대(歷般若臺) 비파대(琵琶臺)…기최고처(其最高處), 비조불능과(飛鳥不能過), 석면준평(石面準平), 유단서적(有丹書迹), 상전영랑제선제석처(相傳永郞諸仙題石處)4 (창산기(昌山記))

라 한것을 보면, 이미 지나온 내설악 중에도 반야대란 곳이 있는 모양이나, 나는 필경 찾아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기 이 반야대의 대하(臺下)에는 반야폭(般若瀑)이라는 폭포가 있습니다. 과연 수성(水聲) 산색(山色)에 고요히 묵념만 하고 앉았다 하면, 범상(凡常)을 넘는 그런 지혜도 생겨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돌아내려, 아까 내려오던 본로(本路)로 나와서는 무수한 지자(之字)의 연쇄로(連鏁路)로 약 오리(五里)가량을 끌리듯 내려오다가, 비로소 설악 동곡의 계수(溪水)를 만남니다.

  여기서 기어히 잊어서는 안될것 한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물을 따라 내려가지 말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것입니다.

  이 굉창(宏敞)한 계류(溪流)를 소상(溯上)5한지 한 10분여에 와선대(臥仙臺)를 만나니, 이 와선은 단명(湍名)으로서, 단(湍)의 고(高)는 약 3척(尺), 그러나 복(福)이 10여간(間)이나 되매, 이를 일러 와선이라 한 모양입니다. 백여명이나 앉을만한 소광(昭曠)한 암상(岩床)에 잠깐 바랑(鉢襄)을 베고 누웠으니, 과연 무얼로 보든지 남의 눈엔 신선(神仙)으로 보일것입니다.

 

  신선 누운 곁에 나도 같이 누웠나니

  사람들 날 대하여 신선이라 이르렸다

  속일래 속이었겠소 과히 허물 말으시오.

 

  열없이 신선인냥 잠깐 속여 누웠다가

  원하고 안될 일을 구태 바라 무엇하리

  이윽고 일어 앉으매 나도 민망 하구료.

 

  여기서 계류를 좌우로 몇 번이나 건느면서 한 이십분을 비(費)하여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비선대(飛仙臺)라 부르는 수절(數折) 비폭(飛瀑)이 중공(中空)에 떠있음은 참말 우의(羽衣)자락이 펄럭임과 같습니다.

  반석(盤石) 위에는 어느때 어떤 사람들인지 빈틈없이 제명(題名)을 하였는데, 얼른 보니, 제각기 제이름을 새긴것이 아니라, 누가 이름 마차(馬車)를 끌고 가다가 쏟아놓은 것 같이 보입니다. 비록 ‘견분(犬糞)’이라도 그것은 주워가면 비료(肥料)에나 쓰려니와, 여기 흘려놓은 이 ‘명분(名糞)’은 주워가 쓸데가 없는것이 한(恨)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만 이 비선대의 경(景)을 관상(觀賞)함에 있어서 까닭없는 불쾌(不快)를 섞어주는 죄(罪)는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이 이름들이 지고 갈것입니다.

  그는 여하간(如何間)에 과연 이 비선대의 절경만은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할 뿐일 것이니, 또한 이것만이 그대로 기쁨이 아니오리까, 일찍 김삼연(金三淵)이 이곳에 와서 비폭층담(飛瀑層潭)이라 제(題)하고 읊은 시(詩)에

 

  경대부금담(瓊臺俯金潭) 우선배청봉(右扇排靑峰)

  융시비중묘(融時備衆妙) 개유세기장(豈惟勢奇壯)

  명산랍극편(名山蠟屐遍) 시협단구상(始愜丹丘想)

  욕락금강암(慾落金剛岩) 경우경주장(驚吁更柱杖)6

 

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중 말(末) 2행(行)은 그냥 보아선 재주뿐인 것 같으나, 여기 이 단애비천(斷崖飛泉) 앞에서는 또한 핍진(逼眞)한 구절(句節)이 아닐 수 없다 합니다.

  그리고 암상(岩上)에 새겨놓은 ‘비선대(飛仙臺)’ 3자(字)는 누구의 필(筆)인지 알수 없으나, 저 내설악(內雪岳) 한계(寒溪) 대승폭(大勝瀑) 대안(對岸)에 새겨놓은 구천(九天)은하(銀河)의 필치(筆致)와도 같음을 보아, 혹 봉래선(蓬萊仙)7이 있다.">의 필이 아닌가도 여겨지나, 무론(毋論) 단정(斷定)할 것은 아닙니다.

 

(다음호에 계속)

~~~~~~~~~~~~~~~~~~~~~~~~~~~~~~~~~~~~~~~~~~~~~~~~~~~~~~~~~~~~~~~~~~~~~~~~~~~~

아래는 위 글의 옮긴이(본인)이 2007년 10월 6일 설악산 신흥사입구~비선대~마등령 구간에서 찍은 사진

 

▼ 금강문을 오르기전 바라본 대청봉~화채봉 능선. 신선대와 범봉이 보인다.

 

▼ 대청봉, 범봉, 중청, 1275봉이 보인다. 

▼ 금강굴에서 내려서서 마등령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집선봉 

▼ 금강굴에서 바라본 대청~화채봉 능선 

▼ 금강굴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  금강굴에서 바라본 집선봉. 금강굴 옆의 벽면에 구절초가 피어 있다. 

▼ 금강굴을 오르는 길에 있는 구절초 

▼ 금강굴을 오르면서 보이는 장군봉과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들이 절경이다. 

▼ 금강굴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집선봉, 천불동 계곡 방향 

 

▼ 금강굴을 오르는 계단을 바라보며 

▼ 비선대 계곡 

▼ 비선대 계곡을 건너는 다리에서 바라본 귀면암 바위 방향 

▼ 장군봉 바위와 적벽 

▼ 비선대 산장에서 바라본 적벽 

 

▼ 신선대를 지난 계곡물에 덩치큰 바위들이 즐비하다. 

 

▼ 저항령계곡 

▼ 청운정 식당과 매점거리를 지난 지점에서 바라본 계곡의 상류 방향과 하류방향

 

 

  1. 〈유마힐경〉,〈유마경〉,〈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등으로 불리는 경전의 주인공. 출가하지 않은 재가거사로 리차비족의 수도인 베살리에 살고 부호라고 전해고 있다.지는 부호라고 하나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앓아 누워있는 유마힐에게 문병을 간 문수보살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대승의 깊은 교리인 불이(不二)법문을 유마거사의 침묵을 통해 깨우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경에 대한 한역은 7가지가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3가지로 지겸(支謙) 역의《유마힐경》 2권, 구마라습(鳩摩羅什) 역의 《유마힐소설경》 3권, 현장(玄奘) 역의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6권이 있다. [본문으로]
  2. “세상의 온갖 형상이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니라” - 노산상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63 [본문으로]
  3. 세상 온갖 맛, 이것 저것 다 그만일세 - ‘노산산행기’(상동) p.166 [본문으로]
  4. 수렴동을 지나 사자목으로 올라 반야대와’ ‘비파대’를 지나서…… 그 가장 높은 곳은 날새도 못넘어 가는 곳인데 편평한 바윗바닥에 붉은 글씨로 새긴 흔적이 있어 전하는 말이 ‘영랑(永郞)’을 비롯한 여러 국선(화랑)들이 돌에 써 놓은 것이라 한다. - ‘노산산행기’(상동) p.167 영랑(永郞)은 신라 효소왕(?~702년) 때의 화랑. 술랑(述郎)·남랑(南郎)·안상(安詳) 등과 함께 사선(四仙)으로 불린다. [본문으로]
  5. 거슬러 올라가다.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다. [본문으로]
  6. 바위에 올라 앉아 ‘금담(金潭)’을 굽어볼 제/ 오른 편에 부채살같이 ‘청봉(靑峰)’이 늘어 섰네/ 괴인 물 솟은 산이 온갖 묘함 갖췄거니/ 장하다 기이하다 그말로만 그치리요/ 명산을 찾아 들어 이곳 저곳 두루 밟아/ 신선 생각에 비로소 맛이 들어/ 앗차! 금강암(金剛岩)에 떨어질까 하다 말고/ 깜짝 놀라서 막대를 고쳐 짚네. - ‘노산산행기’(상동) p.169 [본문으로]
  7. 양사언(楊士彦, 1517~1584) : 호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조선 전기의 문인․·서예가.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시(詩)와 글씨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작품집에 <봉래시집(蓬萊詩集) [본문으로]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