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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22회 (마지막회)

박주화 2012. 1. 21. 14:51

한국산악회 회보 2009년 12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22회)

 

설악행각(雪嶽行脚) (22)

노산 이은상

신흥사(神興寺)와 계조굴(繼祖窟)

 

  비선대(飛仙臺)를 내리고, 와선대(臥仙臺)를 내리고, 이리하여 신흥사로 들어섰습니다.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는 동천(東泉)노선(老禪)을 따라 이층 보제루(普濟樓)에 오르니, 사벽(四壁)에 수많은 시판(詩板)들이 먼저 눈에 띠웁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희귀(稀貴)하다 할것은 추사(秋史) 소년(少年)시(時)의 필적(筆跡)을 볼수 있음이외다.

  이 신흥사는 역시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창건(創建)으로, 처음에는 향성사(香城寺)라 하였다가, 후에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중건(重建)하고 선정사(禪定寺)라 개칭(改稱)하였더니, 이씨조(李氏朝) 인조(仁祖) 28년(서기 1642년)에 선정사가 재(災)한 후, 재명년(再明年)1에 노서(露瑞), 연옥(蓮玉), 혜원(惠元) 등 제승(諸僧)이 중건(重建)하고, 신흥사라 개명하는 때 따라 사적비(寺蹟碑)도 세웠습니다.

  이 절에서 특별히 볼만한 것은 태고(太古) 보우(普雨), 청허(淸虛) 휴정(休靜)을 위시(爲始)하여 명승(名僧) 60인(人)의 진영(眞影)이 있음과 월암당(月岩堂), 벽담당(碧潭堂)을 위시하여 30의 당탑(堂塔)2을 볼수 있음이외다.

  또한 사보(寺寶)로서는, 의상조사의 제품(製品)인 미륵상(彌勒像), 관음상(觀音像), 세지상(勢至像), 각(各) 1위(位)와, 효종대왕(孝宗大王) 사송품(賜送品)인 향로(香爐) 1좌(坐)와, 대종(大鐘) 1좌(坐)가 있습니다마는, 별로 눈뜨이는 것은 못된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잠깐 헐각(歇脚)3한 뒤에, 사(寺)의 우(右)로로 하여 안양암(安養菴)을 지나 20분쯤 걸려 1암자(菴子)를 만나니, 이것은 자장(慈藏)이 능인암(能仁菴)이라 초명(初名)하였던 내원암(內院菴)인데, 이 암자를 지나, 다시 반시간을 비(費)하면, 돌아보아 멀리 토왕성(土王城)폭포(瀑布)가 떨어지고 바라보아 병풍(屛風) 같은 이산(籬山)바위4가 둘렀음을 봅니다.

이산바위 밑 계조굴에 이르니, 어느덧 석양(夕陽)이 빗겼습니다. 거대(巨大)한 암석(岩石) 아래 대문(大門)을 짜 넣고 방(房)을 들여 6간(間)이나 됩니다.

  나는 이 암굴에 방을 넣은 것은 더할수없이 마음에 좋았으나, 대문을 짜 세운것은 입맛에 안 맞음을 느낍니다.

방주(房主)를 찾으니, 성암(惺菴)이란 1노승(老僧)이 나오는데, 암굴의 주인 되기에는 너무나 유순(柔順)한 그의 표정(表情)이 덜 어울리는 듯합니다마는, 다시 생각하매, 조그마한 유순은 지극(至極)한 영맹(獰猛)도 능(能)히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진리(眞理)임을 깨닫습니다.

  이 계조암에서 가장 눈뜨이는 것은 집도 돌이요, 벽도 돌이요, 문도 돌이요, 뜰도 돌인데5, 오직 하나 뜰 한가운데 조그마한 땅을 얻어 거기서 자라난 수십장(數十丈) 되는 ‘젓나무’입니다. 더욱이 가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젓나무이기로, 하도 이상(異常)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성암노승은 웃으며,

  “아마 수십년 전(前)입니다. 여기에 어떤 중 한분이, 밤이면 젓나무 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가 듣기에 너무나 괴로워서, 나무 가지를 죄다 쳐버렸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무론(毋論) 세상의 번뇌(煩惱)를 다 잊으려하는자로 이미 암굴 속에 들어와 수도(修道)하는 이상(以上)이면, 창(窓) 밖에 부는 바람 소리쯤에는 요동(搖動)되지 않을만큼 되어야 할것입니다마는, 어디 정(情)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忍情) 금욕(禁慾)이 그리 쉬운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세상 온갖 일을 버리고 잊으려고

  빈 산 석굴(石窟)에 혼자 들어 누웠거늘

  창 밖에 저 바람 소리 남을 어이 괴롭히나.

 

  찬 하늘 오는 바람 다시 불어 가는 바람

  바람 다니는 길에 나무 아니 심을 것이

  밤ㅅ중만 가지 우는 소리에 도인(道人)도 잠을 못 이루다니.6

 

  우리는 이 젓나무를 돌아 마당바위로 올라가니, 또 한가지의 기관(奇觀)은 ‘동석(動石)7’입니다. 금강(金剛)이 가진 온갖것을 다 가진 설악(雪岳)으로, 하마트면 동석(動石) 하나가 빠질뻔하였지만, 기어이 여기에 와서 동석까지 있고야 만것은 유쾌(愉快)한 일입니다.

  한 사람이 흔드나 만 사람이 흔드나 꼭 같이 흔들리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묵묵(黙黙)한채 위대(偉大)한 존재(存在) 같아, 경의(敬意)를 드립니다.

  우리는 얼마 후에 계조암을 떠나 신흥사로 내려왔습니다.

  여기에서 이 밤을 지나면, 나는 설악산을 떠나 속계(俗界)로 향(向)할것입니다.

  목침(木枕)을 베고 누워, 설악(雪岳) 행각(行脚) 10일간을 생각해보매, 나는 그동안 느낀 것도 많고, 배운것도 많고, 뉘우친 것도 많고, 결심한 것도 많았습니다.

  설악산(雪岳山)이여. 나는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이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당신 품속에서 흐르는 그 영원(永遠)한 생명의 법유(法乳)는 내 피가 되고, 내 살이 되고, 또 내 뼈가 되어, 내가 사는 동안에는 당신이 곧 나요, 내가 곧 당신임을 벗지 못할것입니다.

  먼 후일(後日) 내 영혼에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외롬이 있을 때, 나는 다시 당신의 품속을 찾아와 지고지애(至高至愛)의 세례(洗禮)를 받고 갈 것입니다. (미(尾))8

 

 

(각주 8의 부분)~~~~~~~~~~~~~~~~~~~~~~~~~~~~~~~~~~~~~~~~~~~~~~~~~~~~~

노산산행기(상동) p.174~175 설악행각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설악산을 마지막 떠날것이라 어찌 오늘 밤을 무심히 코만 골 수 있을 겁니까. 기원과 맹서를 들이는 마지막 이별시라도 읊고 가려 합니다.

 

   설악산이여! 이 밤만 자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 품 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닯은 한 말씀

   맹서와 기원을 드리렵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 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 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 되어

   인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 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 사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까

   아픔이 있고 외롬이 있고

  통분한 일이 겹칠 적이면

  언제나 사랑의 세례를 받으러

  당신만을 찾으리이다."

  1. 3년만에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70 [본문으로]
  2. 부도(浮圖) - ‘노산산행기’(상동) p.170. 사리탑 [본문으로]
  3. 다리를 쉬다 [본문으로]
  4. 울타리 바위 → 지금의 ‘울산바위’ [본문으로]
  5. ‘노산산행기’(상동) p.171~172에는 이 문장을 이렇게 풀어 쓰고 있다. ‘뜰도 돌인 그것입니다. 완전히 돌의 세계입니다. // 계조굴 너덜바위 / 길도 바위, 문도 바위 / 바위뜰 바위방에 / 석불같은 중을 만나 / 말없이 마주 섰다가 / 나도 바위 되리라 // 그러다 다시 보니 이같이 온통 바위투성이로 된 곳에서’ [본문으로]
  6. ‘노산산행기’(상동) p.172~173에는 이 싯구와 다르게 쓰고 있다. ‘애닯다 전나무야 / 네 어이 여기 와 선다 / 어디메 설 곳 없어 / 굳이 돌 틈에 우뚝 서서 / 바람에 가지 우는 소리 / 도인조차 괴롭히더냐. // 어리다 저 스님아 / 그대 어이 여기 와 든다 / 네 근심 네 못 풀고 / 나뭇가지만 상치더냐 / 차라리 도 닦지 말고 / 귀먹보를 배우게나.’ (여기서 ‘귀먹보’는 귀머거리‘의 방언) [본문으로]
  7. ‘흔들바위’ [본문으로]
  8. '노산산행기(상동) p.174~175 설악행각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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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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