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크랩]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 20회

박주화 2012. 1. 21. 14:52

한국산악회 회보 '산' (2009년 10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20회)

설악행각(雪嶽行脚) (20)

 

매월당(梅月堂) 유상(遺像) 앞에서

 

  바랑(鉢襄)을 벗어 한쪽 구석에 밀쳐두고, 주지(住持) 인공(印空)노사(老師)의 인도(引導)를 받아, 원통전(圓通殿) 법당(法堂) 안으로 들어서서, 잠깐 쉰 다음에 이층 대장전(大藏殿)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대장전에 쌓아놓은 장경(藏經)은 실로 이 절의 중보(重寶)라고 하겠거니와, 이것은 고종(高宗) 원년(元年, 1864년)에 보개산(寶盖山) 남호선사(南湖禪師)가 대장경을 인출(印出)하여, 명년(明年) 8월에 이곳으로 실어와 암(菴) 후(後)에 건각(建閣)하고 간직하였던 것이나, 풍우(風雨)의 교공(交攻)으로 불과(不過) 기년(幾年)에 동경서퇴(東傾西頹)하여 조석첨례(朝夕瞻禮)에 사승(寺僧)의 불안(不安)이 끊이지 않다가, 건각한지 11년 후에 이 신기(新基)를 복축(卜築)하고, 차차로 단연(檀緣)1을 널리 모아, 이 이층(二層)고각(高閣)을 짓고, 여기다 보관하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이 오세암(五歲菴)에는 지금 주지인 인공(印空)노선사의 재력(財力) 심력(心力)이 다 들은 곳이어니와 보매, 그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이 과연 속인(俗人)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점이 많음을 심히 경앙(景仰)합니다.

  나는 이 절에 보관해둔 ‘삼연고경(三淵古磬)’이라 각(刻)한 옥경(玉磬)을 배관(拜觀)하고, 또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의 유상(遺像) 이본(二本) 앞에 마음의 고개를 몇 번이나 조아립니다.

  금원(錦園)여사(女史)의 기(記)2에 ‘설악지명(雪岳之名), 개이이공익저(盖以二公益著)’3라 한 그 이공(二公) 즉 매월당(梅月堂)과 삼연(三淵)은 실로 이 산을 저명(著名)하게 한이라 아니할 수 없는만큼, 이 산과 같이 영구(永久)히 살아있을 고현(古賢)임은 무론(毋論)입니다.

  이역(異域)에 신지(新知)가 없고 타향(他鄕)에 고구(故舊)가 성기다 할 매월당, 일찍이 삼묘(三畝)4의 택(宅)을 떠나고, 이미 오차(五車)의 서(書)를 버린 매월당, 구견(丘堅)에 평생(平生)의 원(願)을 두고 잠영(簪纓)5에 아지(雅志)를 끊어버린 매월당, 그리하여 이 좋은 계산(溪(山) 명려(明麗)처(處)에 복축(卜築)하고 초어(樵漁)로 마음을 쉬던 매월당의 그 애달픈 일생을 생각하며, 그 흐려진 유상을 우러러 뵈올 때에, 그가 생전(生前)에 자화상(自畵像)에 자찬(自贊)한 말인 ‘이형지막(爾形之藐), 이언대사(爾言大伺), 의치지구학지중(宜置之溝壑之中)’6이란 것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외어집니다.

  이제 이 유상이 있으매, 그를 친히 뵈온듯합니다마는, 아니, 이 유상은 비록 없었더라도, 여기 와서는 그를 생각함이 분명 그를 뵈옴이라 할것입니다.

 

 임은 가셨건만 임을 여기 뵈옵니다

    끼치신 이 얼굴이 너무 분명 하오이다

    눈감고 임의 영혼도 이제 마저 뵈옵니다.

 

  나는 이층으로서 내려와, 루하(樓下)의 전문(殿門)에 지혀 앉아, 적적(寂寂)한 공정(空庭)을 내다보며, 다시 한 장의 노래를 부릅니다.

 

    산사(山寺)에 깊은 황혼(黃昏) 물소리 더욱 차다

    뜰 밖을 내다보매 사람은 하나 없고

    낙엽(落葉)만 바람에 불려 헤락뫼락 하는구나.」7

 

  우(右)로 만경대(萬景臺) 위에 가마귀 울어 예고, 좌(左)로 기용대(起龍臺) 밑에 흐르는 물 소리도 좋으려니와, 뜰에 나서 거니느랄쩨, 지붕 뒤로 넘겨다보이는 관음봉(觀音峯), 동자봉(童子峯)의 연장(連嶂)에 구름이 모여 이는양은 진실로 좋습니다.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일행은 다들 곤한 잠 속에 들었습니다.

  문득 듣노라니, 뜰에 듣는 빗소리! ‘아니, 냇물 소리를 잘못 듣는게나 아닌가?’하면서도, 창문을 열어 보니, 과연 이 깊은 산 깊은 절, 깊은 밤에 궂은비가 내립니다.

  이윽고 인공노선은 우리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옵니다. 마치 기숙사(寄宿舍)의 사감(舍監)과도 같이.

  ‘왜 여지껏 안 주무십니까’

라는 꼭 같은 말을 서로 바꾼 다음에, 그와 나는 어두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비오는 뜰 앞을 내다보며, 진속간(眞俗間)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밤은 아마 자정(子正)이 넘었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날줄을 모릅니다. 혹은 이야기는 끊일찌라도, 비오시는 어두운 산곡(山谷)을 내다보며, 서로 말이 없는채 그대로 앉았습니다.

 늦가을 깊은 밤을 이 산에 비가 오네

    괴로운 내 가슴에도 찬 비 또한 오는구나.

    끊임 없는 빗소리에 생각도 끝없어라

 

    노선(老禪)도 눈을 감고서 말이 없이 앉았구나.

    불켜인 장명등(長明燈)이 빗 속에 밝았나니

    어두운 내 마음에도 저 등불이 그리워라.8

 

마등령(馬登嶺)을 넘으며

 

  산사(山寺)에 밤이 새자 비마자 걷고, 천산만악(千山萬岳)에 구름은 바삐 나는데, 봉황대(鳳凰臺) 곁으로 솟아오른 아침 햇빛은 우리 얼굴 위에, ‘오늘 승경(勝景)에서’ 받을 기쁨을 미리 퍼부어주는 듯한 10월 7일!

  인공노선은 밀수(蜜水)를 내어오며, 떠나기 전에 마시고 가라 합니다.

우리는 감사히 받아 마십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 백청(白淸)을 볼 때,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있는 ‘탐득백화성밀후(探得百花成蜜後) 부지신고수위감(不知辛苦誰爲甘)’이란 말을 생각합니다.9

  그리고서 우리는 암자(菴子)의 우로(右路)로 하여 잠깐 만경대 위로 올랐습니다. 오세암에 오는 이로는 반드시 이 만경대상(上)에 오를것이라 합니다.

올라서 오세암을 내려다보매, 진실로 오세암의 값을 알겠습니다. 전인(前人)이 다 이르되, 암자 터로는 조선(朝鮮) 제일(第一)이라고. 과연 그 옳은 말임을 만경대상에 올라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55~156에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풀어 놓았다.----

 

  81세의 인공스님은 쉽게 걸어 오르는 길을 나이 젊은 우리는 되레 힘들게 올라갑니다.

  나는 문득 '보기에는 낮으막 하더니 정작 오르자니 꽤 높은 걸요'하고 말하자, 인공스님은 '높대도 제 높이, 낮대도 제 높이지!'하는 것이어서 문답에 내가 한대 얻어 맞은 셈이었읍니다.

  그러나 마침 바윗길 넝쿨 속이라 인공스님은 목에 걸었던 염주를 벗어 손목에 휘어감으며 '염주가 길어서 자꾸 걸리는군!'하고 군소리를 하는 것이므로 나는 문득 '길대도 백팔개, 짧대도 백팔개지요'하고 대꾸를 놓아서 아까 문답에서 졌던 복수를 한 셈이었읍니다.

  인공스님과 나는 이 문답 한 번에 완전히 마음이 통해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산은 언제나 제 높이요, 염주도 언제나 제길이지요. 남이 아무리 헐뜯어도 저는 언제나 저요, 또 아무리 추켜 주어도 저는 그대로 저일 뿐입니다.

  남의 훼상과 칭예 때문에 제 끗수가 오르 내리지는 않는 법입니다. 저는 언제나 더도 덜도 안 되는 저일 따름입니다. 옛날부터 일러 오는 말이 암자 터로는 국중 제일이라고 합니다. 과연 옳은 말임을 만경대 위에 올라서만 깨달을 수 있읍니다.

   다시 사방(四方)을 둘러보매, 내설악(內雪岳) 연산(連山)이 행여 점고(點考)에 빠질세라 하고, 서로 다투어 보이는 것은 참으로 절승(絶勝)한 경관(景觀)입니다.

  밑으로 길게 흐른 가야동천(伽倻洞天)은 아직 아침 햇빛을 바로 받지 못하여, 어두운 그늘 속에 그대로 누운 것이, 마치 유장(帷帳)을 채 아니 걷고 눈만 뜨고서 그대로 자리에 누워있는 미인과도 같습니다.

  오늘까지 다니면서 보는 경치는 너무 가까이서 혹은 너무 멀리서 본것이언만, 이 만경대에 올라서는, 꼭 적당한 거리에다 두고 보는 최호(最好)한 조망(眺望) 지점인줄 알겠습니다.

  앞으로 갈길만 없다 하면, 나는 여기서 종일 앉아 생각과 노래에 잠기고 싶습니다마는, 길이 바쁘매, 햇살이 많이 퍼짐을 두려워할 밖에 없음이 실로 이 자연을 대하여 죄송(罪悚)하고 불안(不安)함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만경대를 내려 오세암을 지나며, 인공화상과 별(別)을 고하고, 응진전(應眞殿) 앞으로 우편(右便) 산로(山路)를 더듬어, 다시 봉정암에서 이리로 내려오는 갈랫길을 피(避)하여 좌편(左便) 길로 오르니, 이것은 마등령(馬登嶺)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석경(石逕) 초로(草路)로 1시간쯤 걸려, 령상(嶺上)에 아직 채 덜 걷힌 운무(雲霧)에 산봉(山峰)은 그 윤곽(輪廓)만이 희미하게 들리고, 동(東)으로 바라보매, 운무 넘어로 새어 내린 아침 햇빛이 동해(東海)를 찬란(燦爛)히 물들였습니다.

  흩듣는 낙엽(落葉)! 절망의 허희(噓唏)! 아무리 비회(悲懷)의 그물을 벗어나려하여도, 벗어나려할수록 더욱 얽혀드는 내 마음의 고뇌(苦惱)!

 

    비 지난 아침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찌다 하나 둘씩 그리다는 비오듯이

    날려서 어지러운 마음 더 괴롭게 하는구나.

 

    낙엽에 싸인 돌ㅅ길 막대로 헤치면서

    가다가 문득 돌려 지나온 길 살펴보나

    어딘지 낙엽에 도로 묻혀 알ㅅ길 바이 없는 것을.10

 

  령(嶺)은 해발(海拔) 1327미(米)! 이 산에서는 청봉(靑峯) 다음으로 높은 봉입니다. 이러한 고봉을 넘어, 낙엽 비를 맞으면서 수림(樹林) 속을 헤쳐 평지(平地)로 한 오분(五分) 동안이나 가다가, 절벽의 끝에 나서니, 한줄기 귀를 깎는 찬 바람이 바위채 안아다가 허공(虛空)으로 던져버릴듯합니다.

  나는 얼른 안 넘어지려고 바위 뿌다귀를 꽉 잡았습니다. 이래도 이 지구(地球) 덩이에 무슨 미련(未練)이 있는겐지!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앞으로 천공(天空)에 우뚝 솟은 것은 ‘짐ㅅ대봉’11 그 이름을 듣고보매, 이 ‘설악(雪岳)’이란 큰 배를 이리로 실어올 적에 저 짐ㅅ대가 큰 공로(功勞)를 가졌던 것인양 생각됩니다.

 

   태초(太初)라 조화(造化) 사공 설악(雪岳) 큰 배 만드시고

   구만리(九萬里) 하늘 길을 멀리 이리 오실 적에

   저 ‘짐ㅅ대’ 네 공(功)이 크다 여기 우뚝 세웠나니.12

 

(다음 호에 계속)

~~~~~~~~~~~~~~~~~~~~~~~~~~~~~~~~~~~~~~~~~~~~~~~~~~~~~~~~~~~~~~~~~~~~~~

 

▼ 마등령에서 바라본 1327m봉과 그 오른쪽에 세본봉(짐대봉) (사진 : 블로그주인, 2007.10.7 촬영)  

 

▼ 마등령을 오르며 바라본 세존봉의 일몰 (사진 : 블로그주인, 2007.10.6 촬영)  

 

 

  1. 시주(施主) : 절에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 단나(檀那)·단월(檀越)·시조(施助)·시출(施出)·화주(化主) [본문으로]
  2. 14세 소녀시절에 쓴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p.152 [본문으로]
  3. ‘설악산의 이름은 무릇 두 분 때문에 더욱 나타났다.’ - ‘노산산행기’(상동) p.152 [본문으로]
  4. 묘(畝) : 중국 주공(周公)이 처음 제정한 것으로 전답의 넓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1묘의 넓이는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30평(坪:99.174m2)으로 표시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5. 높은 벼슬아치들이 쓰는 비녀와 갓끈. 양반이나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 또는 그 지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문으로]
  6. 네 꼴이 지극히 못나고, 네 말이 크게 어리석으니 마땅히 너를 시궁창 속에 두어야 겠다. - ‘노산산행기’(상동) p.152 [본문으로]
  7. ‘노산산행기’(상동) p.153에는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평생에 그리던 님을/ 여기와서 뵈옵니다/ 우리 두 사이/ 오백년이 흘렀어도/ 님의 뜻 나는 압니다/ 님도 내 뜻 아시리라.//마주 앉으오니/ 서로 할말 많소이다/ 내 설움 님의 설움/ 한 자리에 털어 놓고/ 남 몰래 오늘 이 밤을/ 단 둘이서 샙시다려.’ [본문으로]
  8. ‘노산산행기’(상동) p.154~155에는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깊은 산 가을 밤에/ 비소리 구슬프다/ 저 스님 무슨 생각에/ 눈을 감고 앉았는고./ 나도 따라 눈 감고 앉아/ 비소리를 들어본다/ 비소린 눈 감고 듣지 말게/ 가슴 젖어 드느니’ [본문으로]
  9. ‘노산산행기’(상동) p.155에는 이부분이 생략되었다. [본문으로]
  10. ‘노산산행기’(상동) p.158 - ‘비 개인 아침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깨랑 머리 위에/ 흗듣는 나뭇잎이/ 뉘게서 매를 맞은들/ 이다지야 아플라고’ [본문으로]
  11. 짐대봉 : 현재 ‘진대봉’ 또는 ‘세존봉(1025m)’이라 부르는 곳으로 추정됨. ‘짐대’는 당간(幢竿), 깃대, 돛대를 말함. [본문으로]
  12. ‘노산산행기’(상동) p.159 - ‘태초라 조화 사공/ 설악 큰 배 만들어서/ 돛 달고 하늘 길을/ 멀리 흘러 내릴 적에/ 짐대야 네 공이 크다/ 이 나라로 오너라’ [본문으로]
출처 : ~▷Feel Your Eyes! Fill Your Mind!
글쓴이 : 힘빛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