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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 최남선은 설악기행에서 '탄탄히 짜인 맛은 금강산이 더 낫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산이 도리어 낫다. 금강산은 너무 드러나서 마치 길가에서 술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 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견주어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으되 고운 모습으로 물 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듯이 있어서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서 만족할 것이다. 설악산은 그 경치를 낱낱이 헤아려보면 그 빼어남이 결코 금강산의 아래에 둘 것이 아니지만 원체 이름 높은 금강산에 눌려서 세상에 알려지기는 금강산에 견주면 몇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니 이는 아는 이가 보면 도리어 우수운 일이다."라고 상찬하였는데 그 설악의 감추어진 속살들을 헤쳐보고자 오늘도 설악산행이다.
장마가 끝남 토왕골 우측 소토왕골로 집선봉을 오르고자 계곡과 능선을 살펴본다.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산악인중 한 사람인 이태리의 "월터 보나티"는 불확실성과 불가능성을 전통적인 알파인 등반의 필수요소로서 인위적인 요소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등반은 그저 육체적인 노동일뿐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또 등산을 산을 오르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 극복의 길로 보았다. 알피니즘은 자기 인식에 이르는 길이며 대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성장하고 부활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그의 산행철학이었다. 설악의 알려지지 않은 골짜기나 능선의 품에 들면서 난 늘 그의 산행관을 몇번이고 되씹어보곤 한다.
설악의 비지정등로 중 한 곳인 달마봉 릿지길은 외설악의 웅장한 맛은 없지만, 고만고만한 암능을 오르내리며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구간과, 한차례 수직 하강 및 칼등의 암을 넘어야 하는 등 손과 발을 동시에 다 사용해야 하는 등반의 요소를 두루 갖춘 산행길이다. 물론 이런 암능산행에는 두려움, 위험, 어려움이 뒤따른다.
알프스 최고의 가이드 중 한 명이었던 "가스통 레뷰파"는 많은 위대한 산악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모든 산악인들처럼 어려움 즉, 곤란함과 위험을 구분하고자 했다. 그의 말 "위험은 피하고 곤란은 극복하자"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이 곳을 찾아 날등만을 고집하는 산행이라면 누구나 오래 기억될 즐거운 산행 코스다.
등산은 산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어려움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다. 등산의 성취감은 높이보다는 선택한 길과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우린 이것을 등로주의라 한다) 이런 기쁨이야말로 산이 도전자들에게 주는 가장 크고 값진 선물이다. 정상이라는 ‘결과’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극복의 ‘과정’을 거쳐야만 얻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더 기꺼워 하는 일은 스스로 오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등산의 세계에서는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이, 산의 고도(altitude)보다 산에 대한 태도(attitude)가 더 중요하다
설악의 비경이나 절경을 만나러 가는 산행은 항상 젊음을 요구한다. 젊음이란 무엇이며 인생의 어느 때를 말함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세상사에 대한 대응방법을 말한다. 젊음이란 나이가 아니고 옷차림세도 머리 스타일도 아니다. 젊음이란 처음 본 길을 놀라움과 기쁨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일수도, 파도를 타는 소년일수도, 또 아직도 악산을 오르면 노래하는 노인일 수도 있다. 또한 젊음이란 청년기만의 특권이 아니다. 꿈이 싱싱하게 살아 있고 정신의 근육이 확고히 조율되어 있으며 정신의 유익이 분방하게 흐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젊음은 만개하는 것으로 정신은 색갈이 없는것, 상상력의 광채, 그 자체로서 항상 투명한 것이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풋풋한 시원(始原)의 풍경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몸속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가짐으로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키며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으로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사람은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늙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리 때 비로소 늙는 것으로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믿음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의심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가고, 자신감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두려움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가며, 희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젊어지고, 낙망의 양에 따라 그만큼 늙어간다. 그러므로 우린 항상새롭게, 항상 즐겁게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한다. 어느 책에서인가 읽은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신흥사(神興寺) 앞 동편에 솟아있는 높이 635m의 암봉(岩峰)으로 소박하면서도 의연하며 단아한 생김새에 밝은 기운이 뿜어 나오는 신흥사의 案山(안산은 아주 야트막한 산을 말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런 산은 좋은 기운들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막아 복(福)을 부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인 달마봉(일명 관음봉이라고도 한다). 둥글기가 흡사 달마와 같다하여 달마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하나, 울산바위(천후암)에서 동으로 떨어져 홀로 좌정한 이 암봉을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인도에서 동쪽 중국으로 향한 뜻에 비유하여 붙힌 이름이 아닐까 싶다.
달마는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Dharma)’, 즉 법(佛法)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쓰는 ‘달마(達磨)’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영어로는 스님들의 법문을 ‘달마토크(Dharma talk)’라 한다.
달마 스님에게 9년 면벽세월은 이론이나 학문으로서의 불교의 한계, 그것을 넘어서는 지점에 있는 선불교의 근본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사방 벽으로 통제된 방은 고독과 유폐의 공간이다. 하지만 벽은 곧 허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일단 허물어지면 분리나 단절을 무색케 하는 밀물 같은 쏟아짐, 완전무결한 소통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달마가 서녘에서 온 뜻은?(동으로 간 뜻은?) 용아가 선판을 갖다 주니까, 취미 화상은 다짜고짜 그것으로 후려쳤다. 용아는 "칠 테면 치십시오. 그런다고 달마가 서녘에서 온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했다. 용아는 이번에는 임제 화상에게 "달마가 중국에 무엇 하러 왔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임제 화상도 "저 방석 좀 갔다 주게" 했다. 용아가 방석을 갖다 주니까, 임제 화상 역시 그것으로 철썩 때렸다. 용아는 "때릴 테면 때리십시오. 그런다고 달마가 서녘에서 온 목적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하고 들이댔다.
용아라는 젊은 중이 취미, 임제 두 선사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내두르다 호되게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 그 좌선의 흉내를 내보겠느냐" 하는 뜻에서 취미는 선판(禪板 : 오랜 시간 좌선하여 피곤할 때 잠시 몸을 기대고 쉬는 널빤지)을 좀 갖다 달라고 했고, 임제는 포단(蒲團 : 부들로 만든 둥근 자리, 좌선할 때 쓰는 둥근 방석)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한 동기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지쳤다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말하려고 준비하라는 뜻을 비쳤으나, 이 점을 깨닫지 못한 용아는 고지식하게도 그대로 갔다 주었다. 그래서 취미, 임제 둘 다 "이 멍청이야" 하고 "받아들자마자 후려친 것이었다.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하다 온 천지에 진리가 가득한 것을 놓치는 격이다. 우리 또한 공연한 헛수고를 하는 일은 없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용아도 결국 그 후에 눈을 떴다. 우리도 그렇게 산행을 하며 인생이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취미, 임제 선사에게 용아는 멍청이일 뿐이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지친 사람에게 용아의 세계는 아무리 강조하고 대들어도 고지식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취미,임제가 다시 용아의 세계로 들어가 용아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용아는 용아의 세계에서 더 많은 근접치 못할 우주의 진리를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용아의 세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할 것이다. 세상을 손에 넣은 듯한 우둔함을 경계할 일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소생의 원기를 불어 넣어 준다. 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때의 고금을 떠나서 자연이 예술의 변함 없는 경배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조용헌님은 골산과 육산을 빗대어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쳐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맛을 보아야 한다고 말 하는데. 사람이 산을 가려서 오르듯이 산도 사람을 가려 들여 그에게만 비경을 보여주고 그의 영혼을 지배하며 자신의 가장 빛나는 곳을 보여준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거나 땀흘리는 노고와 수고를 마다하는자, 자신을 겸허히 낮추 수 있는 자세를 갖지 않은 자에게 자연은 자신의 창을 열어 그 안의 신비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은 설악을 즐겨 찾는 이들을 쉬이 수긍케한다.
산행중 험로를 만나거나 혹은 길이 나있지않는 곳에서 어떤 이들은 길도 아닌 곳에 왔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다 길이었다. 목적지까지 빠르고 다니기 편하며 위험치 않은 곳을 골라 사람들은 길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또 새로은 길이 열려 옛 길은 잊혀지기도한다. 그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산행시 어디 잘 다듬어진 편안한 길 만을 갈 수 있던가? 목적지까지의 곳곳에는 크고 작은 장애물이 있고 벽을 만나기도 한다. 그 길은 언제나 우리에게 도전을 요구하며 대상이 자연이든 자신이든 극복이 아닌 산행은 없다.
산에서의 벽이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난관이다. 그러나 그 난관은 산행의 어려움만이 아니라 자기 극복의 행위가 진정한 산행의 요체일 것이다. 주식옵션 가격결정(통상 블랙~솔즈 공식으로 불린다)으로 마이런솔즈와 함께 197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피셔 블렌의 저서 "더 높은 수익율을 얻기위해선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며 더 높은 산을 오르려면 더 큰 고통을 감수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은 절경과 비경을 즐겨 찾아가는 사람들은 꼭 귀담어 새겨둘 말이다.
밝고 향기나며 적당히 바람이 있는 길, 잘 닦인 길이 편안한 길이 아니라 걷는 동안 마음 편안하면 그 길이 좋은 길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李外秀는 길에 관한 명상중에서 이처럼 말하고 있다.
토기가 왕성하지 않으면 기암괴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5행설에서 폭포이름이 연유되었다고 하는데 상단(130m), 중단(60m), 하단(130m) 도합 330여m에 이른다. 겨울철 국내 빙폭등반의 대명사인 토왕폭은 1973년 1월2일 한국 알피니스트 중 걸출한 한 사람이었던 고 송준호가 이곳을 초등 단독 등반하다 불귀의 객이 된후 1977년 박영래에 의해 처음으로 단독 등반되었다.
제철 음식이 있듯이 풍경도 제철이 있다. 제철 풍경은 어느 것이든 아름답다. 또 보는 위치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니 자연 풍경은 조망점의 선정에 의하여 명품이 태어나기도한다. 폭포의 경우 가장 좋은 곳은 낙수구와 폭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폭포 높이의 중간 정도의 위치다. 아득한 맛과 은근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는 폭포 높이의 두배정도가 적당하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면서 또한 힘든 고통의 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에 대해 동경하면서도 고행이 가져올 두려움 때문에 그 과정은 치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 없는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비전을 가진 사람은 시작에서 뿐 아니라 모든 과정에서 빛과 어두움을 맛보며 성숙의 길, 기쁨의 길을 걸어간다.
산행에서는 고통의 길과 기쁨의 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언제나 한 몸이다. 고통의 길 안에도 기쁨이 있고, 기쁨의 길 위에도 고통이 뒤따른다. 만약 선택한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보람과 성숙을 맛본다. 그 어떤 고통의 길도 종내는 기쁨 속으로 걸어간다는 것을 우린 산행내내 잊지말아야 한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고통을 통해서 성숙해진 우리의 영혼이 비로서 삶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듯이
자유로운 산행을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야만이
산의 구속으로 부터 자유로워져 보다 즐겁고 활기찬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이 겹쳐지면서 멀리 멀어지는 깊고 아득한 풍경, 산 고스락에 올라섰을 때 시계가 탁 열리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장대한 산하,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는 것은 풍경을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은 사랑해야만 보는 것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그것을 볼줄 아는 안목이 없으면 아무리 수려한 기암절승도 단지 바위덩어리에 불과하고 산 능선이 겹쳐지면서 멀리 깊어진 심원(深遠)의 산도 그저 중첩된 산 덩어리에 불과하다.
바로 풍경이라 부르는 그것! 어느 시인은 "빛이 짜맞추는 문장"이라 했던 그것!
산행길에서 바위길만을 타거나 계단을 오르면 지루하고, 다리가 팍팍하다. 오를 때는 헐떡거리고, 내려올 때는 무릎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흙길의 편안함은 없드라도 깨끗하고 넓은 암반과 바위들이 새로운 모습과풍경을 연출하는 계곡 옆으로 녹음 우거진 호젓한 숲속길이 지루하지 않게 오르내리는 이 코스는 산행의 색다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런곳을 잠시라도 걷다보면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좋은 생각도 떠오른다. 좋은 생각이 뭐 별건가. 나를 몰아쳐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풀어서 삶을 누리게하는 것, 나의 부족함 까지 좋아하는 것,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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