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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지암을 다녀와서

박주화 2010. 2. 8. 18:18

차를 학문으로 공부하다보니 해야 할 공부가 많아서 몇개월간 일지암을 찾지 못했습니다.궁색한 변명이겠죠.

 

스승님을 뵙기위해 이해가 다가기전 초의선사가 평생을 수행하며 40년간 일지암에서 독처지관한

 

초의선사의 수행처 일지암을 다녀왔습니다..겨울 땔감을 스승님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겨울 한철 나기위해서

 

장작불을 때는 곳이 일지암에는 여러곳이 있기에 겨울 땔감준비가 스승님 일지암 생활중 중요한 일중에

 

하나입니다.

 

일지암에서 불목하니하며 한철 공부한 인연이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제자로서 자주 찾아뵈야 하나 공부에 묻혀서 살다보니 세월흘러

 

가는것 망각하고 살아 갑니다.

 

이제 겨우 차학자가 되기위해 한발 나간 제자를 이제사 제자로 인정하십니다.

 

독일에서 포교하는 원불교 교무님이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뜻을 이루고도 남을 것이라고 힘을 주기도 합니다.

 

초의선사와 무슨인연인지 선사의 고향에서 살다보니 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힉에서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해야 할 공부 자료가  제 공부방을 차지하고 저를 독려합니다.

 

제 블로그에 차자료가 많아서 많은 공부인들이 자료찾아서 방문한다고 스승님도 다녀            가셨다고 하시며

 

더 많은 자료를 공유하라고 하십니다. 차문화 발전에 앞장서며 초의선사를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스승님으로부터 품평을 전공하는 제자에게 다양한 차를 접하게하시며 실전 공부를 시켜 주셨습니다.

 

일지암에 차문화교육센터가 완공되면 많은 다인들이 차 공부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차도 학문으로 들어가기위해서는 수십년 준비해야 합니다.저는 이제 학문으로 가는 길에 초입에

 

들어 선것 같습니다.차 교육현장에서 차도 가르치라고 하십니다.그동안 공부한 경험을 학문하겠다는

 

분들에게는 조금이라도 함께하려고 합니다.배우면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일중에 하나입니다.제가 감당해야 할 일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통하여 차를 알리고 초의선사를 알리고 스승님 자료를 모아서 공유하는 것이 저의 도리라 여기기에 이 일을 해 왔습니다.초의선사의 고향사람이 아니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제 블로그 자료를 이용한다고 제 블로그에 스승님이 방문해서 확인하고 가셨다고 더 정진하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부담됩니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흩어져있던 자료를 한곳에 모으다보니 그것이 차 자료를 찾는 분들의 수고를

 

제가 대신항 것입니다. 전공자로서 기초 자료를 모아서 스스로 공부하게 하자는 것이 저의 의도이고

 

저는 스스로 찾아서 공부해야 그공부가 발전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내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 주워서 부담도 많이 되지만 그동안 제가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도

 

가끔씩 올리기도 합니다.저도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차를 알리는 일을 블로그를 통하여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인으로 살아갑니다.

 

저를 염려하는 스승님이 일지암에서 주석하시니 그 것으로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워 가겠습니다.

 

 

스승님과 인연을 다음생에도 이어갈 것입니다.다음생에도 스승님과 인연이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초의선사의 동다송 시가 일지암 초당에 주련형식으로 10편이 걸려잇습니다.일지암을 돌며 주련 1편 1편을 마음에 새기며 차공부 힘을 얻어서 충전하고 삶의 터전으로 동아왔습니다.

 

초의차문화원 교육원장 명은당 선생님이 팽주를 하셔서 스승님으로부터 조회를 받는 그 차 자리가

 

차를 하는 차인의 자세를 들려주십니다.

 

조회를 통하여 차공부하는 제자가 명은당선생님과 명전이 그렇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흥사에는 동안거 기간에 눈퍼런 수좌들이 초의선사가 건축한 대광명전에서 동안거 수행정진하고

 

계셔서 일지암을 오르는 것도 조심 스럽 오름니다.마침 수좌 스님들 방선시간이라 낮익은 수좌스님이 초의선사를 알리는 일에 지금도 매진하는냐고 물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마디 남기고 지나가셨습니다.

 

선원 수좌스님들이 정진하는 모습에 저도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분발심을 갖게 됩니다.

 

일지암 유천으로 차를 호사하는 어제 한나절이 제 공부길에 큰 힘이 됩니다.힘을 주시기 위해서 스승님은 그렇게 제자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스승님이 지켜보시니 더 조심스럽게 이곳도 운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승님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신다는 것은 제게 신중하게  공부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분들이 오셔서 자료를 할용하는지 구체적으로 저는 잘 모릅니다.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자료활용해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먼저 제 공부를 위해서 모아진 자료입니다.그것을 일부 공개해서 나누지만 더 깊은 자료는 공개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위 이해관계가 있다보니 조심스럽습니다.

 

차교재를 함께 공부하면서 이곳 자료를 활용하시길 당부 들입니다.

 

훌륭한 차 스승님이 주위에 있습니다.스승을 의지해서 공부하십시요.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더 자료를 공개할 생각입니다.그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차를 전공하는 저로서는 국내외 많은 차공부 공부인들이 오셔서 자료를 보신다고 알고 있을뿐 더이상은 모릅니다.

 

저도 모르는 부분이많습니다.지적해 주시면 검토해서 교정하고 합니다.

 

말한마디의 신중함을 저는 가슴메 새기고 살아갑니다.저도 차 공부하는데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차공부는 지금처럼 할수 있을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학자는 차 논문으로 평가를합니다.

 

제 석사논문이 학자로서 가는길에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이제 한발 나간 것 뿐입니다.

 

차학회에서 제 논문이 정식으로 발표되면 이곳에서도 공개 하겠습니다.

 

자신이 공부한 만큼 논문을 쓸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박사학위 논문만 저를 기디리지만 박사논문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논문을 게속 써 갈 생각이고

 

차 교재도 출간 할 생각입니다.아직은 시기 상조라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공부와 철저한 준비가 좋은 논문과 교재가 만들어 집니다.

 

제 품평이론 논문이 일부가 공개되어 차하는 공부인들 곁으로 150부가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세상으로 나갔습니다.자료집으로 나갔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죠.

 

정식으로 차학회에서 내년봄에 투고해 달라하니 봄에는 전문이 공개 되겠죠.

 

저도 차학회 회원이니 학회지에 논문이 실리는 것도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차학회 논문심사위원 교수님들이 검토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차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제 논문이 발표되면 좋겠다고 해서 정식으로 늦었지만 학회에서 발표할 생각입니다.

 

논문을 중심으로 품평 책도 박사과정 마무리 전에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공부인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즐차하세요. 아래 자료는 덤으로 읽어주세요.함께 올려놓았습니다.

 

일지암
 
대웅전에서 700m가량 정상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茶苑)인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는 일지암을 39세 때인 1824년(순조24)에 중건하였으며 1866년(고종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년 간 이곳에서 독처지관(獨處止觀)을 한 유서 깊은 암자이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유명한「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선다일여의 가풍을 드날리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같은 석학, 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 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해 일지암은 한국차의 성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했던 다정(茶亭)이 있으며 집 뒤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대롱에 연결된 돌물확(수조)에 담겨져 흐른다. 이 다천(茶泉)과 돌물확, 차를 끓이던 다조(돌부엌), 그리고 위아래의 연못과 좌선석(坐禪石)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이 초정(草亭)은 가운데에 방 한칸을 두고 사면에 툇마루를 두른 4평 규모의 띠집이다.
 
일지암
 
일지암
 
그리고 일지암 본당은 윗 연못에 평석을 쌓아올린 4개의 돌기둥이 누마루를 받치게 하여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게 한다.

연못에 잉어가 한가로이 노니고 누마루에서 구름 낀 산경을 멀리 내려다보는 다회(茶會)와 선유(仙遊)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음미하게 할만하다. 그래서 초의의 시(詩)·선(禪)·다(茶)의 경지가 한데 어우러진 차 문화의 산실이 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초정과 연못 사이에 축조된 석축에는 ‘다합(茶龕)’이라 새겨진 평평한 면석이 끼여 있고 그 앞에는 이보다 넓은 판석이 하나 놓여 있다. 이 돌 평상은 차를 마시며 선을 하던 좌선석으로 보기도 한다.차를 올리기도 합니다.다합은 찻통이란 뜻이 있습니다.글씨는 소암 현중화선생 글 입니다.

초의선사는 대흥사의 13대종사로 일찍이 이곳에 기거하며 다도를 중흥시킨다. 그는「동다송」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를 저술하고 차를 재배하여 널리 펴는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을 크게 정리하고 닦음으로서 다도의 중흥조로 추앙 받고 있다.

당시 대흥사 가까이에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유명한 다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초의와 차를 통하여 더욱 두텁게 교유하였다. 다산은 이곳과 가까운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대흥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추사 또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까닭에 대흥사와의 관계를 맺게되고 초의와도 남다른 친교를 가졌다. 이런 까닭으로 19세기초 대흥사를 중심으로 한 다도는 다시 한번 중흥을 이루게 된다.

또한 소치 허련(허유)이 이곳에서 초의선사의 그림공부 지도를 받았고 초의선사를 통해 추사 김정희라는 스승을 만나게 된 곳으로 당시 조선후기 일지암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학문과 예술의 활동은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곳은 조선말의 대 석학들이라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 그리고 초의선사가 교류한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대흥사 일지암은 우리나라 다도의 요람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매년 음력 8월1일 초의의 열반일을 기해 추모행사인 초의제를 거행하고 있다.
 
일지암
 
아이콘 초의선사
 
초의선사  
초의선사(1786~1866)는 무안출신으로 속가에서 성은 장씨였고 법명은 의순(意恂)이며 초의(草衣)는 호이다. 대흥사의 13대 종사의 한 사람인 대선사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 불린다.

강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것을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 준 일이 인연이 되어 6세 때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했다. 그 후 각지로 다니며 운수행각 하다가 대흥사 10대강사인 완호윤우(琓虎 尹佑)스님의 법을 받고 초의라는 법호를 얻었다.

초의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으나 그 테두리에 그치지 않고 유학, 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며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게 사귀었고 범패와 서예, 시, 문장에도 능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만이 선이 아니었으며 현실의 일상 생활과 선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차(茶)와 선(禪)을 하나로 보아 ‘동다송’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초의선사는 차 한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고 하였으며 차는 그 성품에 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며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 같은 것이라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가 지은 ‘동다송’은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차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주로 불가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과 영남지방은 차나무가 자라는데 풍토가 알맞았으므로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와 불교가 밀려나면서 다도도 쇠퇴하여 겨우 명맥만 이어지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하고 차를 만들어 널리 폄으로써 전래의 차 문화를 중흥시켰다. 24세 연상이어서 스승으로 모셨던 정약용과 동갑으로 승속과 유불의 경계를 넘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정을 나누었던 김정희와의 사귐에서도 학문과 예술, 차의 향기가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초의선사는 귀양살이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서로 터놓고 도탑게 지냈다. 김정희가 말년에 초의선사가 보낸 차를 받고 써 보낸 걸작 ‘명선(茗禪)’이 대흥사에 전해온다.

초의선사는 중년이후 큰절의 번거로움을 피해 일지암을 짓고 40여년간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止觀)에 전념하다가 81세로 입적했다.

 

                              

 

 

 

 

출처 : 茗田의 차사랑
글쓴이 : 茗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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