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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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우리가 감명 깊게 읽고 배운 정비석 (1911~1991, 소설가, 본명은 瑞죽)의 금강산 기행문 ‘산정무한(山情無限)’, 지금도 떠오르는 그 유려(流麗)한 문장들, 이제 그 문장과 사진을 보면서, 금강산으로 함께 떠나 보자. ‘산정무한’은 금강산 중에서 지금 우리가 가 볼 수 없는 내금강 (內金剛)의 기행문이다. 현재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에 실려 있으나, 정비석이 발표한 원문(原文)대로 실었음을 밝힌다. |
<정비석>
① 장안사(長安寺)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峻?)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하고, 혹은 막 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체풍모(容體風貌)가 형형색색인 품이 범속이 아니다. 산의 품평회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이다. 장안사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 우거진 것은 모두 전나무뿐인데, 도시(都是) 이등변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이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다례탑 같다. 부처님은 다례상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탐내신 것일까? 얼핏 듣기에 탐낸다는 것이 불온하다면, 탐하는 그것이 이미 물욕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면,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佛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률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교접된 지점에 조그마한 다점(茶店)이 있다. ······‘산정무한’에서

<장안사, 1930년대 자료임>
<6·25전쟁때 폐허가 된 장안사. ‘보존유적 제96호 장안사터’라
쓰인 푯말만이 남아 있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 울창한 사이, 물 맑고 아름다운 만천(萬川)을 건너자, 유명한 장안사가 나온다. 장안사는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의 발원(發願)으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A·D 551년 창건했다고 전해 온다. 장경봉(長慶峰, 1076m), 석가봉(釋迦峰, 946m), 작은 지장봉(小地藏峰) 등이 칼날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300년 이상묵은 전나무와 잣나무가 울울창창(鬱鬱蒼蒼) 우거진 속에 맑은 물소리가 울려, 원(元)나라 순제때 왕후 기씨(奇氏)가 불공을 드리려고 여기까지 왔던(A·D 1343년) 선경(仙境)이다. 장안사는 유점사(楡岾寺)와 더불어 금강산 2대사찰(二大寺刹)로 껍혔으며, 6전 7각(六殿七閣) 2루(二樓) 2문(二門)을 비롯하여, 기타 10여 동(棟)의 부속 건물들을 거느려, 웅대미려(雄大美麗)함을 자랑하였다. 그중에서도 대웅보전과 사성전은 2층 건물로서 모양과 짜임새에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대적 특성을 나타내는 훌륭한 건축물이었다.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부르노·타우트(Bruno Taut, 1880-1938)도 한국 건축술에 크게 놀라, 금강산에서 평생 우리 건축술을 연구하다 장안사 부근에 묻혔다고 한다. 일제 시대, 장안사는 육영사업에 관심을 기울여, 개성에 장화 여학교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지금, 장안사는 폐허가 되어 ‘장안사터’라 쓰인 푯말만이 외로이 해와 달을 반기도 있을 뿐이다.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興亡)이 산중(山中)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장안사’에서
② 명경대(明鏡臺)
다리도 쉬일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나타나는 게 글자가 명경대(明鏡臺)!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慙愧) 없는 공명한 심정을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를 머물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惡心)을 여기서만은 정(淨)하게 하지 아니치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가하며, 다점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생반같이 푸른 황천담(黃泉潭)을 굽어보며,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깎은 듯이 판판한 거암이 우뚝 마주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化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유무를 이 명경에 비치면, 그 흐르는 밀테 황천담에까지 영자(影子)가 반영되었다고 안내인은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련운 물품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臆說)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일 거울의 묘술을 아무런 우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可驚)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송(念誦)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業罪)를 명경에 영조(映照)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雲上氣稟)에 무슨죄가 있으랴만, 등극하실 몸에 마의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佛法)이 말하는 전생의 연일지는 모른다.
·······‘산정무한’에서
<명경대, 1930년대의 자료임>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만천(萬川) 상류로 가다가 오른쪽 꺾어지니, 백천동(百千洞, 일명 萬泉江)계곡이다. 석가봉(釋迦峰,946m)과 십왕봉(十王峰, 1141m, 일명 시왕봉) 두 산줄기 사이에 펼쳐 있어, 마치 베틀 북처럼 수없이 이리왔다, 러리갔다 하며, 꼬불꼬불한 길로 ‘오리바위’ 지나, 배석대(拜石臺)에서 우러러보면, 커다란 거울을 벼랑에 세워 놓은 듯한 경관(景觀)이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 솟아 있으니, 바로 유명한 명경대 (높이 90m, 폭 30m 되는 거대한 규모이다.)이다. 업경대(業鏡臺)라고도 부른다. 갈고 다듬어, 반들반들 갈생 거울이 그 아래 누르퉁퉁 황천담(黃泉潭, 일명 黃流潭 또는 玉鏡潭, 깊이 3.8m, 면적180㎡)에 비친 모습으 stlsql의 거울 그대로다. 특히, 붉은 단풍과 함께 명경대 그림자 황천담에 어룽어룽 비칠 때면, 더없는 아름다움 연출한다. 명경대란 불교 용어로서, 저승길 입구에 있다는 거울을 말한다. 이 거울은 지나가는 이의 생전의 선과 악을 그대로 비추어 심판한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 명경대 앞에서 자신 있게 설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과연, 명경대와 주위에 높이 솟은 십왕봉(일명 시왕봉), 판관봉(判官峰), 죄인봉(罪人峰), 사자봉(使者峰), 지옥문(地獄門), 극락문(極樂門)은 한편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③ 석가봉(釋迦峰, 946m)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처럼 막아서는 웅자가 석가봉(釋迦峰), 뒤로 맹호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峰)!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狹窄)한 골짜구니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며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산정무한’에서

<석 가 봉>
장안사터에서 유명한 벽류{碧流; 장안사 앞을 흐르는 만천(萬川) 바닥 200여m 구간에 푸른 바위(靑石)가 쫙 깔려 있어, 흐르는 물 유달리 푸르게 보이는 곳}를 지나 올라가니, 오른쪽에 수려한 석가봉의 자태가 나타난다. 마치 그 누가 품을 들여 차곡차곡 쌓은 듯 인공산(人工山)처럼 생겼는데, 구름이 늘 허리를 감돌아 봉우리는 마치 바아 위 뜬 섬처럼 보인다. 잠자던 사슴도 석가봉이 다 보이게 되면, 그제야 잠을 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로 석가봉에 구름이 감돌지 않는 날은 드물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강원도 금강산의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스리슬슬 다 넘누나.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네,
네가 내 간장을 스리슬슬 다 녹인다.
······민요 ‘금강산 백도라지’
④ 영원암(靈源庵)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엄나무·피나무·자작나무·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속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한 화원이요, 벽공(碧空)에 외연히 솟은 봉봉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오른 한 떨기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아닌 EO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요란(白化燎亂)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神火)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면서 있는 것일까? 진주홍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같이 우러러볼수록 요란하다.
······‘산정무한’에서

<영 원 암, 1910년대 자료임>
명경대 감상한 다음, 극락으로 통한다는 황사굴(黃蛇窟),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흑사굴(黑蛇窟)을 지나고, 마의태자의 ‘대궐터’, 애마(愛馬)인 용마(龍馬)를 매었다는 ‘계마석’을 지난다. 얼무 후 돌무더기 (조탑장) 부근에서 우두마면봉(牛頭馬面峰) 구경하면, 지장봉(地藏峰, 1381m) 언덕 자리잡은 영원암이 나타난다. 신라 영원조사(靈源祖師)가 도를 닦았다는 곳, 서쪽엔 하얀 죽순이 돋은 듯 봉우리를 솟았고, 기묘한 돌 기둥도 들쑥날쑥 솟았다. 바람도 조심조심, 살살 불고, 물살도 가만가만 흐른다는 영원동(靈源洞)은 금강산 중에서도 가장 깊숙하고 고요한 곳으로 전해 온다. 유정(幽靜)한 분위기와 더불어, 단풍의 바다로도 유명하다. 금강산 중에서도 영원동의 단풍은 직접보고, 보아서 느낄 뿐, 결코 말하거나 그럴 것이 아니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그대로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정비석의 ’山情無限‘에서
이 부근은 잣나무 무성하고, 당귀, 함박꽃, 만삼(蔓蔘) 등 약초가 많이 난다. 금강산에 나는 약초이고 보니, 약효도 더욱 좋으리라. 영원암 지나 오르니, 옥초대(沃焦臺) 나타난다. 빼어난 전망대다. 전설이 있어, 달밤이면 영원조사가 여기 올라 옥피리 불었는데, 그때마다 학이 날아와 춤추었다 전해 온다.
洞隔溪深路僅開 동격계심로근개
험한 계곡 깊은 개울 좁은 길 헤치고
登臨一息萬塵灰 등림일식만진회
암자에 오르니 온갖 번뇌 재가 되는구나.
尼僧禱佛誠心極 이승도불성심극
여승은 정성껏 부처님께 빌고
磬鐸聲中鳥自來 경탁성중조자래
경쇠와 목탁 소리에 새들이 저절로 날아드는구나.
······김구하(金九河, ~, 법호는 鷲山)
지금 영원암은 소실되었다.
⑤ 망군대(望軍臺, 1331m)
그림 속의 연화담·수렴폭을 완상(翫賞)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石階)와 목잔(木棧)과 철삭(鐵索)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삼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 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트인다. 여기가 해발 오천 척의 망군대(望軍臺), 아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할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은 바로 지호지간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유상(有象)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에 할거하는 영웅들처럼 여기에도 불끈 저기에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봉(千?斷峰) 무한제(無限際)로 뚝 떨어진 황천계곡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신부 머리의 칠보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스란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산정무한’에서

<망군대. 1930년대 자료임>
돌무더기(조탑장)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그림 같은 연화담(蓮花潭)과 수렴동(水簾洞)의 미관(美觀)을 감상하고, ‘사자목’을 넘어 ‘봉황대’와 ‘의자바위’ 등을 바라보며, 네발로 기어오르니, 푸른 하늘 아래 수억 년 깎이고 다듬어진 백옥봉두(白玉峰頭)가 은빛을 발하며 손짓한다. 여기가 바로 비로봉 버금가는 전망대인 망군대이다. 아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廣闊)하고 웅장(雄壯)하고 숭엄(崇嚴)하던가! 북으로 능허봉(1465m), 영랑봉(1601m), 중향성(1520m), 비로봉(1638m), 동으로 장군봉(1560m), 월출봉(1575m), 일출봉(1552m), 차일봉(1529m), 백마봉(1510m)이 닭의 벼슬처럼 이어졌고, 가까이 향로봉, 법기봉, 지장봉(1381m), 십왕봉(1141m), 혈망봉(1372m) 등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시야가 미치는 한, 푸른 연기처럼, 성남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망군대의 위관(偉觀)! 끝없는 봉우리, 봉우리들이 망군대를 중심으로 몇 겹의 원을 그리며 모였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얼핏 보면 복잡한 듯하나, 살펴보면 질서가 있으니, 무수(無數)한 소통일(小統一)을 합하여 내금강 전체가 하나의 대통일(大統一)을 이루니, 복잡, 질서 그리고 통일의 조화(調和)여! 철따라 비취(翡翠)빛, 진홍(眞紅)빛 뚝뚝 떨어져 흐르는 수림(樹林)의 바다! 지긋지긋하도록 용하게 된 금강산(내금강)을 발가벗겨 놓고, 참빗질식으로 감상하며, 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선(線)의 전개와 변화, 그 예술적 구성에 감격의 눈물이 펑펑쏟아지는 곳이다.
내금강 만들 때,
조물주 앉아서 지휘한 곳이 망군대요,
조각(彫刻)이 끝난 뒤,
선녀들 거느려 잔치한 곳이 망군대요,
보름달 두둥실,
선녀들 금강산 보자고 내려온 곳도 망군대더라.
금강산 큰 조각을 천겁(千劫)만에 이루던 날,
옥황(玉皇)의 보좌(寶座)를 어누 곳에 정하리까.
망군대 백옥봉두(白玉峰頭)야 그곳인가 하노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만이천봉!① 무양(武揚)하냐 금강산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 철학, 명예, 재산,
그 외에도 있으면 있는 대로 태워 버리는
줄을 너는 모르리라.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법호는 卍海)
주① 무양(無恙) : 몸에 탈이 없음.
⑥ 마하연(摩訶衍)
수줍어 수줍어 생글 눈 깔며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세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訶衍)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고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나,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맞은편 법기봉(法起峰) 같되, 가지에 깃들였던 산새처럼 밝으면 떠나갈 길손에게 무엇을 속삭이려는 그 무언의 수태(愁態)가 무한 가애(可哀)로왔다.
여기는 선원이어서 불겨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명은 됨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무한청산행욕진
백운심처노승다
無限靑山行欲盡
白雲深處老僧多
옛날 그대로다. 노독(路毒)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하며, 불을 바라보는 지완의 말씨가 하도 따듯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었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잊지 못할 얼굴들이 흐르는 물에 낙화 송이같이 떠올랐다. 밤 깊어 뜰에 나서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이 몸에 스산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더니,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리인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이니다. 아마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르겠다. 뜰을 어청어청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오롯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가는 줄 모르고 정성껏 읽는 품이 춘향이 태형(笞刑) 맞으며 백(百)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 같고, 누명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정배(定配)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 백작이 시베리아로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산은 처량히 깊어 갔다.
······‘산정무한’에서

<마하연, 1910년대 자료임>

<마하연, 1930년대 자료임>
만폭동 8담 끝 화룡담 지나 오르며, 왼쪽 사자봉(獅子峰) 뒤로 쫑긋 하늘 찌르고 솟은 촉대봉(燭臺峰, 1148m)을 구경하다 보면, 마하연이 나타난다.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고, 당우(堂宇)는 순조 31년 월송선사(月松禪師)가 중건한 것으로, 기역자(ㄱ)로 된, 사방 여덟자(八尺)인 방(房)이 53개나 있던 웅대한 건물이었다. 근처에 만회암(萬恢庵)이라는 암자도 있었다. 지금, 마하연도 소실되어 부속 건물인 ①칠성각과, 부근에 8각 정자인 연화대(蓮華臺, 일명 만회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해발 846m의 평지(平地) 마하연터에서의 조망(眺望)은 특출(特出)하다. 뒤에 촉대봉, 앞에 혈망봉, 법기봉이 솟았고, 왼쪽에 중향성, 나한봉의 산줄기 백옥성(白玉城)처럼 뻗었다. 법기봉 머리 앉아 한 손을 넌짓 들로 반야경 가르치니 ‘법기암(法起庵)’, 그 앞에 무릎 꿇고 다소곳 고개 숙여 배우니 ‘파륜암(波輪庵)’, 일명 상제바위), 바람에 치맛자락 휘날리며 사뿐사뿐 모롱이 돌아오니 ‘관음암(觀音庵)’, 참으로 절묘(絶妙)하다. 그뿐인가. 수미봉(須彌峰, 일명 영추봉) 일곱 개 뾰죽뾰죽 ‘칠성바위’, 조쪽의 푸른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 훤하게 보여 주는 혈망봉(穴望峰) 맞구명, 참으로 신비(神秘)하다. 이렇게 수려하고 오묘한 경관에 세속을 떠나 수도하는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부근에 처녀림 우거졌고, 금강산 특수 식물인 금강초롱 만발하여, 새로운 정서를 자아낸다. 교통 요지로서, 백운대 가는 길과 묘길상 거쳐 비로봉 또는 내무재력 가는 길이 있고, 서북쪽 설옥동(일명 가섭동)과 수미봉(일명 영추봉)을 거쳐 수미암터로 가는 길이 있다.
참새가 날아들고 새 달이 돋아 온다.
외나무 다리로 홀로 가는 저 선사(禪師)야,
네 절이 얼마나 하관대 원종성(遠鐘聲)이 들리나니.
주① 칠성각(七星閣) : 앞면 3간, 옆면 1간의 작고 소박한 건축물이다. 비바람 막기 위한 풍판이 건물 높이의 ⅔ 정도로 내려오게 한 점이 특이하다. 지금, 남아있다.
⑦ 금사다리(金梯), 은사다리(銀梯)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谷)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욱하고, 음침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겨드니, 은제 금제(銀梯金梯)에서 기어이 비는 내렸다. 햇솜 같은 연무 속에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우구(雨具)가 없어 젖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어디서 불어 왔는가, 획 소리를 내며 운무를 홀가닥 헤치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진홍 주단폭같이 참된 진달래 단풍이 다음다음 전개된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라이랑으로 엇바뀌어 가며 짠(織)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산정무한’에서

<금사다리(金梯), 은사다리(銀梯)>
묘길상에서 사선교(四仙橋: 지금은 消失되었다.) 못 미쳐 왼쪽(오늘쪽은 내무재령 가는 길)으로 올라, ‘20년 고개’등성이에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 모습인 ‘사랑바위’를 감상하며 오르니, 급한 비탈에 집채덩이 돌 사태(沙汰)가 나서 톱날 같은 바위 줄기 뻗어 올라, 그 끝이 비로봉에 닿았다. 돌 사태(沙汰) 너비는 10여 m, 길이는 수백 m에 달한다. 그모양 어느 것이나 층계를 이루어, 질서(秩序)가 정연(整然)하게 까마득한 하늘로 올려 놓은 사다리 같은데, 돌옷(이끼)이 아래는 금빛, 위는 은빛이어서 금사다리, 은사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톱날 같은 바위 줄기 아침해가 뜰 때면 영롱한 은빛을 발하고, 저녁해가 질 때면 찬란한 금빛을 뿌린다. 금사다리, 은사다리 다 오르면, 비로봉(毘盧峰. 1638m)과 영랑봉(永郞峰, 1601m)이 연결된 능선 중간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면 비로봉 정상에 서게 된다.
웃노라 예사람을 바벨탑이 부질없네.
만층의 금사다리 예 있는 줄 모르던가.
알고도 찾는 이 적으니 그만 한이 없어라.
태초(太初)라 금강산에 금봉 은봉 있것더라.
금봉 헐어 금사다리 은봉 헐어 은사달.
하늘에 오르는 길을 이리하여 이루니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오를수록 우세(雨勢)는 맹렬했으니 농무 속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영봉을 영송(迎送)하는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로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번에 창해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다점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엿보고 섰던 동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先着客)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노하신 것일까? 경천동지(驚天動地)도 유만부동이지 이렇게 만상(萬象)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긴장을 조이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졌다. 변환(變幻)도 이만하면 극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이는 운해뿐!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을 것 같았다. 내·외·해 삼금강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어 가석(可惜)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 척을 가하고 오연(傲然)히 저립(佇立)해서 만학천봉을 발 밑에 꿇어엎드렸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千軍萬馬)에 군림하는 쾌승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 ······‘산정무한’에서

<비로봉에 올라, 동쪽(채하봉, 세존봉과 그 너머 동해)을 바라본 경치임>
<비로봉 설경(외금강 세존봉 능선 너머로 바라본 경치임)>
금사다리, 은사다리 지나, 비로봉과 영랑봉(永郞峰, 1601m) 잇닿은 등성이에, 방목장(放牧場)을 방불(彷佛)케 하는 넓디넓은 비로고대(毘盧高臺, 둘레 약 4km)에서 숨을 고르고 조금 오르니, 1만 2천 봉(一萬二千峰)의 꼭대기-비로봉-에 이른다. 여기는 비로봉, 내·외금강(內·外金剛)의 만학천봉(萬壑千峰)이 발 아래 조아리고, 동해의 검푸른 물결에 거울을 띄운 듯, 빛나는 해금강이 모형지도처럼 펼쳐졌다. (사진은 비로봉에서 외금강쪽을 바라본 경치의 일부다.) 금강산은 바다에 닿아 있는 산이라 (일부는 바다 위로 솟아올라 해금강이 되었다.), 검푸른 동해가 발 아래 아득히 펼쳐지고, 만 이천 봉이 머리를 조아리니, 사방 수백 기 일원(一圓)에 비로봉을 당할 자 없으므로 해발 수천 m의 산악들보다 오히려 높고 웅대하게 보일 뿐 아니라, 다양한 구성, 풍요한 산악미, 변화무쌍한 색채까지 더해 주니, 그 웅대하고 아름다운 전망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특히, 비로봉에서 동해 해돋이(日出)와 저녁 노을에 비친 일만 이천 봉 감상은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알려져, 일찍이 ①화엄경(華嚴經)에서도 지적된 명산으로, 한민족(韓民族)이 염원하는 이상향이었으며, 세계 여행가들은 저마다 최대의 찬사와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비로봉 올라서니 세상만사 우스워라.
산해 만리(山海萬里)를 ②일모(一眸)에 넣었으니,
그 따위 만국도성(萬國都城)이 ③의질(蟻?)에나 비하리오.
금강산 만 이천 봉 발 아래 굽어 보고,
창해의 푸른 물에 하늘 닿은 곳 찾노라니,
청풍이 백운을 몰아 귓가으로 지나더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金剛頌』
금 雄大한 全景.
山體의 大膽한 構成,
깎아지른 絶壁,
人間의 발길이 닿지 않은 處女林,
그 怪奇한 峽谷,
순결한 瀑布,
急流와 深淵에 비치는 光線과 色彩,
이에 의한 無窮한 變化와 造和를
世界 어느 곳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Dr. Kruger
비로봉 대자연을 사람아 물딪 마소.
눈도 미쳐 못 보거니 입이 능히 말할손가.
비로봉 알려 하옵거든 가 보소서 하노라.
④ 홍몽(鴻?)이 ⑤부판(剖判)하니 하늘이요 땅이로다.
창해와 만 이천 봉 신생의 빛 마시올 제,
사람이 소리를 높여 창세송(創世頌)을 부르더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주① 화엄경(華嚴經): 석가가 득도(得道)한 후 27일 되던 날에, 법계(法界) 평등의 진리를 증오(證俉)한 불(佛)의 만행(萬行), 만덕(萬德)을 칭양(稱揚)한 불교의 가장 높은 경전. 「~, 東北方~海中, 有處名金剛山,~」이라 하였다.
주② 일모(一眸): 한눈에 보임, 일망(一望)
주③ 의질(蟻?): 개미의 집. 개밋둑.
주④ 홍몽(鴻?): 하늘과 땅이 아직 갈리지 않은 모양 주
⑤ 부판(剖判): 둘로 갈라서 나누다
정작 비로봉 올라서니, 평평하고, 흙과 풀도 있는 평지(平地)인데, 둘글넚적한 거암(巨岩)들 모여 있는 중, 한가운데 ‘배바위’라는 것이 있어, 동해를 지나는 배들이 멀리서 평범하게 생긴이 바위를 보고 뱃길을 잡는다 하니, 개벽 이래(開闢 以來) 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바위라 하겠다. 정녕, 위대(偉大)는 평범(平凡)과 통하는 것인가.
비로봉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 8개중, 내금강으로부터 오르는 코스가 4개 인데, ①장안사터→표훈사→만폭동→마하연터→묘길상→금사다리, 은사다리→비로봉. ②장안사터→표훈사→만폭동→마하연터→묘길상→사선교→내무재령→일출봉→장군성→비로봉. ③장안사터→표훈사→마하연터→설옥동→수미암터→영랑봉→비로고대→비로봉. ④금강천 상류인 신풍리 쑥밭(...田)→구성동→영랑봉→비로고대→비로봉이다. 외금강으로부터 오르는 코스도 4개인데, ①온정리→옥류동→구룡폭포→상팔담→비사문→구담곡(아홉소골)→용마석→비로봉 산장→비로봉. ②온정리→동석동 또는 발연동→집선봉→채하봉→장군봉→장군성→비로봉. ③온정리→유점사터→효운동→내무재령→일출봉→장군성→비로봉. ④온정리→한하계→만상정→상등봉→삼성암터→용마석→비로봉 산장→비로봉이다.
그중에서 내금강 ①번 코스와 외금강 ①번 코스가 잘 정비(整備)되어 있고, 경치도 가장 좋고, 내·외금강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코스이다. 그 사이 비로봉 산장(용마석과 비로봉 사이에 있다.)에서 일박(一泊)해야 하는데 비로봉 해돋이(日出) 감상은 필설(筆舌)로 형용(形容)할 수 없다. 비로봉 서쪽 가까이 영랑봉이 솟았다. 영랑봉(永郞峰, 1601m)은 비로봉에 버금가는 금강산 제이(第二)의 봉우리다. 둥글뭉실 흙산인데, 생김새 웅대하고 전망도 좋다. 남쪽은 중향성(衆香城)이라는 절묘한 경치를 이루며 가파른 낭떠러지 되어 있고, 서쪽은 그 옛날 신선이 콩 농사를 지었다는 ‘월명수좌콩밭등’을 거쳐 능허봉(凌虛峰, 1465m)과 닿았고 북쪽은 구성동(九成洞) 계곡이 펼쳐진다.
이 일대(一帶)에는 금강산 특수종 식물인 ‘금강국수나무’, 기름을 먹으면 신경통과 폐결핵에 좋다는, 앵두처럼 빨간 '마가목 열매‘, 특히, 수분이 적은 고산지대에 알맞게 잎이 두텁고, 산 밑의 나비 유인하느라 꽃이 유달리 크며 화려한, 즙을 짜서 종창에 바르면 독기를 없애 준다는 ‘만병초’ 등 수많은 약초들 무더기로 자생하는 중, 산삼(山蔘)도 있으나, 숲속에 숨어,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하니, 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 볼 일이다.
曳杖陟崔嵬
지팡이 짚고 꼭대기(비로봉) 오르니
長風四面來
거센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靑天頭上帽
푸른 하늘은 머리위에 쓴 모자요
碧海掌中盃
(동해의) 푸른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이이(李珥, 1536~1584, 호는 栗谷)
배바위야 네 덕이 크다,
만장봉두(萬丈峰頭)에 말없이 앉아 있어,
창해(滄海)에 가는 배의 길잡이가 된다 하니,
아마도 성인(聖人)의 공(功)이 이러한가 하노라.
만 이천 봉이 기(奇)로써 다툴 적에,
비로야 네가 홀로 범(凡)으로 높단 말가,
배바위 이고 앉았으니 더욱 기뻐하노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樹中) 공주였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마의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철책도 상석도 없이 풍상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창명히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서된 태자의 애기(愛騎)의 고영(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그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는 듯 소복한 백화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명월이 중천에 외롭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麻衣) 걸치고 스스로 이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년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진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는 대장부의 흉리(胸裡)는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천자의 창맹(蒼氓)에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년사직(千年社稷)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을 다투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산정무한’에서

<마의태자묘, 1930년대 자료임>

<용마석, 1930년대 자료임>
지금까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산정무한(山情無限)이 전부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이 기회에 그 앞 부분-전편(前篇)-을 실었다.
산길 걷기에 알맞도록 간편(簡便)히만 차리고 떠난다는 옷치장이 정작 푸른 하늘 아래에 떨치고 나서니 멋은 제대로 들엇다. 스타킹과 니커즈빤쓰와 잠바로 몸을 가뿐히 단속한 후 등산모(登山帽) 제껴쓰고 바랑을 걸머지고 고개를 드니, 장차 우리의 발 밑에 밟혀야할 만 이천 봉(萬二千峰)이 천 리(千里)로 트인 창공(蒼空)에 뚜렷이 솟아 보이는 듯하다. 그립던 금강산(金剛山)으로, 그리운 금강산(金剛山)으로! 떨치고 나선 산장에서는 어느 새 산(山)의 향기(香氣)가 서리서리 풍긴다. 산뜻한 마음으로 활기쳐 가며 산(山)으로 떠나는 지완(之完)과 나는 이미 본정통(本町通)에 방황하던 창백한 인텔 리가 아니라,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기개(氣槪)를 가진 갈 데 없는 야인 문 서방이요 정 생원(鄭生員)이었다. 차 안에서 무슨 흘게 빠진 체모란 말이냐! 우리 조상들의 본을 따서 우리도 할 소리 못 할 소리 남 꺼릴 것 없이 성량껏 떠들었으면 그만이 아닌가? 스스로 야인의 긍지에 도취되어서, 위로 흘러가는 창 밖의 경개(景槪)를 우리는 호화로운 심정으로 영접하였다.
고리타분한 생활을 항간(巷間)에 남겨 두고, 잠시나마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쾌사였던가? 인간 생활이 코답지근하고, 답답하기 한없음을 이제서 깨달은 듯이나 하였다. 잠시나마 악착스러운 생활을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품안에 들어 본다는 것은, 항상 오만한 인간생활의 순화를 위하여 얼마나 긴요한 일일까? 허심탄회 인화지와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자연들을 우리는 해면처럼 흡수했으면 그만이었다. 철원서 금강 전철로 차를 바꿔 탄 것이 저무는 일곱 시쯤, 먼 산골에는 황혼이 어리고, 대지는 각일각 회색으로 용해되어 가는데, 개성을 추상(추상)당한 산령들이 묵직한 윤곽만으로 서녘 하늘에 웅크렸다. 고요하기 태고 같은 이 풍경 속에서 순시(瞬時)도 멎음 없이 변화를 조종하는 기막힌 조화는 대체 누가 부리는 요술이던가? 창명(蒼冥) 저무는 경개에 심취하여 창가에 기대인 채 마음의 평화를 즐기다가, 우리는 어느덧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이 지녔던 비밀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배로 여기던 비밀을 아낌없이 털어 놓도록 그만치 우리를 에워싼 분위기는 순수했던 것이다. 유리창 밖으로 비치는 지완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의 청춘사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사랑담을 허심히 들어 넘기며, 나는 몇 번이고 담배를 바꿔 피웠다. 침착한 여인네가 장롱에 옷가지 챙겨 넣듯 차근차근 조리 있게 읽어 나가는 지완의 능숙한 화술은 맑은 그의 음성과 어울려서 귓가에 도란도란 향기로왔다. 사랑이 그처럼 담담할 수 있는가? 세상에 사랑처럼 쓰라린 것 매운 것은 없다는데, 지완의 것은 아침 이슬같이 담결(淡潔)했다니, 그도 그의 성격의 소치일까?
창 밖에 금풍(金風)이 소슬해서, 그 사람이 유난히 고매(高邁)하게 느껴졌다. 내금강역에 닿으니 밤 열 시! 어느 사찰을 연상시키는 순 한국식 거하(巨廈)가 달빛 속에 우리를 반기는 듯 맞는다. 내금강 역사다. 어느 외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洋館) 외금강역과 아울러 이 한국식 내금강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無限) 정겨운 호대조(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내와 외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십삼야월의 달빛 차갑게 넘실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의 밤이라 과시(果是)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谿間)을 흐르는 물 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해서,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세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마시니 어느덧 간장도 청수(淸水)에 씻기운 듯 맑아 온다. 청계를 끼고 물 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問仙橋)!
문선교! 어느 때 어떤 은사(隱士)가 예까지 찾아와서 선경(仙境)이 어디내고 목동에게 차문(借問)한 고사라도 있었던가? 있을 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과 속계(俗界)가 스스로 유별한 탓이었던가?
‘차간주가하처재 목동요지행화촌(차간주가하처재 목동요지행화촌)’은 속계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이렷다, 동양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이름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지 한 겹밖에 아닌 듯이 믿어지니, 이미 세진(世塵)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석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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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
답변-
올바른 네티켓 밝은 우리 사회많이 기다렸지요? OOO 학생!에듀넷 고등 국어 담당 대구 경일여고 9594 박전현입니다.
OOO학생 죄송합니다.비석과 금강산의 대화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1920년에 나온 수필집이라 선생님이 지금 구하기도 어렵고 참고 자료도 찾기가 힘들어서요.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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